한자로는 보통 안(雁)이 쓰였고, 홍(鴻)·양조(陽鳥)·옹계(翁鷄)·사순(沙鶉)·가아( 0x954e鵝)·육루(鵱鷜)·주조(朱鳥)·상신(霜信)·매매(䳸䳸)·홍안(鴻雁)이라고도 불렸다.
우리말로는 기러기·기럭이·기럭기라고 불렸다. 전세계에 14종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 나라에는 흑기러기·회색기러기·쇠기러기·흰이마기러기·큰기러기·흰기러기·개리 등 7종이 기록되어 있다. 북반구의 북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남하, 이동해 온다.
흰이마기러기·회색기러기·흰기러기 등 3종의 길 잃은 새[迷鳥]를 제외한 나머지 4종은 모두 겨울새들이다. 개리는 매우 희귀해졌고 흑기러기는 전라남도 여수에서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 이르는 해상에서 월동하는데, 그 무리는 모두 약 1천 마리 정도이다. 아직까지 한반도의 전역에서 흔히 월동하는 기러기는 쇠기러기와 큰기러기의 2종뿐인데, 그들 월동군도 개발로 인하여 월동지가 협소해짐에 따라 한정된 곳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쇠기러기는 몸길이 72㎝로 회갈색의 깃털로 덮여 있고, 큰기러기는 몸길이 85㎝에 흑갈색의 깃털로 덮여 있다. 쇠기러기는 특히 복부에 불규칙적인 가로줄무늬가 있으나 어릴 때는 없으며, 부리 기부(基部) 주위의 흰색 테도 어린 새는 없다. 이들 두 종의 새는 10월하순경에 우리 나라에 날아오기 시작하여 논·밭·저수지·해안과 습초지 또는 해안 갯벌 등지에 내려앉으며, 하천가와 하천의 섬에서도 눈에 띈다. 주로 초식을 하는 새로서 벼·보리와 밀, 기타 연한 풀과 풀씨를 먹는다.
기러기는 한방에서 약으로 쓰인다. ≪동의보감≫에는 기러기 기름은 풍비(風痺:몸과 팔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에 연급(攣急)하거나 편고(偏枯:신체의 일부에 마비가 일어나는 증상)하여 기(氣)가 통하지 않는 것을 다스리고 머리털·수염·눈썹을 기르고 근육이나 뼈를 장하게 하며, 살코기는 모든 풍(風)을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기러기는 가을에 오고 봄에 돌아가는 철새로서 가을을 알리는 새인 동시에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서 인식되었다.
고전소설 <적성의전>에서 성의(成義)는 기러기 편에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다시 소식을 전했다는 내용이 있으며, <춘향전>의 이별요(離別謠) 중에 “새벽서리 찬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러기 한양성내 가거들랑 도령님께 이내소식 전해주오.”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달거리>라는 단가(短歌)에서도 “청천에 울고가는 저 홍안 행여 소식 바랐더니 창망한 구름 밖에 처량한 빈 댓소리뿐이로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기러기는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서 가을이라는 계절의 풍광과 어울려 처량한 정서를 나타내 주는 새이며, 사람이 왕래하기 어려운 곳에 소식을 전하여 주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기러기를 ‘신조(信鳥)’라고도 한다. 한편, 기러기는 암컷과 수컷이 의가 좋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홀아비나 홀어미의 외로운 신세를 “짝 잃은 기러기 같다.”고 하며, 짝사랑하는 사람을 놀리는 말로 ‘외기러기 짝사랑’이라는 속담도 있다.
혼례식에서 목안(木雁)을 전하는 습속은 이러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랑은 신부집에 이르러 혼례의 첫 의식으로 나무로 깎은 기러기를 신부집에 전한다. 그래서 혼인예식을 일명 ‘전안례(奠雁禮)’라고도 한다. 또한 남의 형제를 ‘안행(雁行)’이라고 하는데, 기러기가 의좋게 나란히 날아다니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규합총서≫에서도 기러기를 평하여 “추우면 북으로부터 남형양에 그치고 더우면 남으로부터 북안문(北雁門)에 돌아가니 신(信)이요, 날면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하니 예(禮)요,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않으니 절(節)이요, 밤이 되면 무리를 지어 자되 하나가 순경하고 낮이 되면 갈대를 머금어 주살(실을 매어서 쏘는 화살)을 피하니 지혜가 있기 때문에 예폐(禮幣:고마움의 뜻으로 보내는 물건)하는 데 쓴다.”고 하였다.
이처럼 기러기는 가을을 알리는 새로서,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서, 또한 정의가 두텁고 사랑이 지극한 새로서 우리에게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