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봉성암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성능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석조 불탑. 사리탑.
개설
부도의 주인공으로 전하는 성능대사는 호가 ‘계파(桂坡)’로 자세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 숙종∼영조 대에 활약한 승려였다. 그는 구례 화엄사의 벽암 각성(碧岩覺性)의 문하에서 3년 동안 수행하고, 화엄사 장육전의 화주승으로서 숙종의 지원을 받아 1702년에 공역을 마무리하였다. 숙종은 장육전이 완공되자 ‘각황전(覺皇殿)’이라 사액하였다. 이 일로 성능대사를 신임한 숙종은 1711년 한양 수비의 요충인 북한산성 축성을 그에게 위임하고 팔도도총섭의 직위를 내렸다. 성능대사는 북한산성 축성이 완료된 후 다시 화엄사로 가서 「산성기사(山城紀事)」를 집필하고, 『북한지(北漢誌)』를 찬하고 판각하여 1745년 신임 도총섭인 서봉(瑞鳳)에게 인계하였다고 한다.
성능대사는 1745년 이후 오래지 않아 입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부도도 성능대사 입적 직후 세워졌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18세기 중반경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봉성암의 부도는 성능대사의 성공적인 북한산성 축성과 연관지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구례 화엄사 부도군에도 ‘계파당(桂坡堂)’이라는 당호를 새긴 석종형 부도가 전해지고 있다. 계파는 성능대사의 호인데, 생전 화엄사에서의 활약상으로 보아 입적 후 분사리(分舍利)되어 화엄사에 부도가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능대사는 숙종의 신임 및 후원은 물론이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유학자들도 중시한 북한산성 축성을 원만하게 마무리함으로써 거기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았을 것이다. 이는 성능대사의 부도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우수한 양식에 큰 규모로 건립되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내용
탑신부에서 탑신석은 평면 팔각형으로 간략하게 치석하였으며, 옥개석은 하부에 4단으로 구성된 받침을 두고, 그 위에 넓고 높은 1단의 받침을 추가하였다. 옥개석의 처마부는 두툼하게 하여 다소 둔중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모서리마다 굵게 마루부를 표현하고, 그 끝에 음각선으로 좌우대칭을 이룬 귀꽃을 표현하였다.
상륜부는 원형으로 잘 다듬어진 복발(覆鉢)과 보륜(寶輪)을 마련하고 꼭대기에 보주(寶珠)를 올려 마무리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범우고(梵宇攷)』
- 『북한지(北漢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 부도』(엄기표, 학연문화사, 2003)
- 『북한산의 불교 유적』(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불교문화재 발굴조사단, 1999)
- 『한국의 석조 미술』(정영호,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 『화엄사지(華嚴寺誌)』(한국학문헌연구소 편, 아세아문화사, 1997)
- 「고려∼조선시대 분사리(分舍利) 부도의 건립 기록과 양상 그리고 조성 배경」(엄기표, 『불교미술사학』 20, 2015)
- 「조선시대 승려 갑계(甲契)의 연구」(이재창, 『불교학보』 13,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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