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현등사 함허당 득통탑 및 석등은 경기도 가평군 하면 현등사에 있는 조선 전기 승려 기화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다. 2004년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433년기화대사가 입적하자 세워졌다. 승탑과 석등은 경내 200m 정도 떨어진 능선 자락에 나란히 서 있다. 승탑은 지대석을 팔각형으로 마련하고 그 위에 2단의 팔각대석을 올린 팔각당형 양식이다. 등은 평면이 사각형으로 조선시대 사대부 묘 앞에 건립되던 장명등과 동일한 양식을 보인다. 이 승탑과 석등은 조선 초기 왕실이나 사대부가의 묘역에 건립된 석조물들과도 친연성이 있다.
정의
경기도 가평군 하면 현등사에 있는 조선전기 승려 기화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 승탑, 부도, 묘탑.
개설
승탑의 주인공인 기화대사는 충주 출신으로 1396년 관악산 의상암으로 들어가 삭발하고 출가하였다. 다음해인 1397년에는 회암사에 머물고 있던 무학대사 자초를 찾아가 법요(法要)를 들은 후 주요 산사를 찾아다니며 수행에 전념하였다. 이후 대승사(大乘寺), 관음굴(觀音窟), 연봉사(烟峯寺), 대자사(大慈寺), 봉암사(鳳巖寺) 등에 거처하면서 선풍을 진작하거나 강론을 널리 펼쳤다. 특히 1421년에는 세종의 부탁으로 개성 대자사에 머물며 선비대비(先妣大妃)의 명복을 빌고 왕과 신하들에게 설법을 펼치기도 하였다. 기화대사가 1433년 4월 입적하자 세종은 그의 사리탑을 세우도록 하였고, 그의 사리탑은 분사리되어 평산 연봉사, 가평 현등사, 강화 정수사, 문경 봉암사 등에 세워졌다고 한다.
승탑과 석등은 현등사 경내에서 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능선 자락에 나란히 서 있다. 승탑은 석축을 쌓아 좁게 대지를 조성한 후 일직선상에 석등과 함께 세워져 있는데, 기화대사가 입적한 1433년 건립 당시의 위치 그대로로 추정된다. 승탑과 석등을 일직선상에 배치하는 방식은 회암사의 지공선사(指空禪師) 사리탑의 예에서 보듯 고려 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승탑은 지형적으로 남향을 고려하고 있어 길지(吉地)를 선정하여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승탑은 팔각당형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지대석은 팔각형으로 마련하고 그 위에 2단의 팔각 대석(臺石)을 올렸다. 이와 같이 팔각당형 승탑에서 기단부를 하대석-중대석-상대석으로 구성하지 않고 간략한 판석형(板石形) 대석으로 하는 수법은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하여 고려 후기부터 나타난다. 상단 대석 상면에는 원형의 홈을 파서 원구형(圓球形) 탑신석이 삽입, 고정되도록 하였다. 탑신석은 가운데가 볼록한 구형으로 남면에 ‘함허당득통(涵虛堂得通)’이라고 명문을 새겼다. 이 명문으로 승탑의 주인공과 건립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옥개석은 하부에는 넓은 1단의 받침을 두고 낙수홈을 마련하였다. 옥개석의 처마부는 살짝 들어 올려 다소나마 경쾌한 인상을 준다. 낙수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합각부에는 마루부가 표현되었다. 이처럼 승탑에서 옥개석의 높이가 높고, 낙수면이 급경사를 이루며, 처마부에 목조 건축물의 부재를 간략화하여 표현한 수법 등은 조선 전기에 많이 나타난다. 상륜부는 복발과 보륜, 보주를 간략하게 올려 마무리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 부도』(엄기표, 학연문화사, 2003)
- 「함허당 득통화상 행장(涵虛堂得通和尙行狀)」(『韓國佛敎全書』 7, 1994)
- 「현등사탑 개조기(懸燈寺塔改造記)」(경기도, 『畿內寺院誌』, 1988)
- 「조선전기 부도(浮屠)의 건립 현황과 미술사적 의의」(엄기표, 『佛敎學報』 第86輯,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19)
- 「고려∼조선시대 분사리(分舍利) 부도의 건립 기록과 양상 그리고 조성 배경」(엄기표, 『불교미술사학』 20, 2015)
- 「조선 전기 부도의 특징 연구」(이수정, 『문화사학』 37, 2012)
- 「조선 초기 기화대사 함허당의 분사리 석조 부도에 대한 고찰」(엄기표, 『문화사학』 25, 2006)
- 「조선 전기 석조 부도 양식의 일고찰」(정영호, 『동양학』 3,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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