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중동 건설붐은 1973년의 석유파동(石油波動) 이후 한국 건설업체들이 중동 국가들의 오일 달러를 벌기 위해 그 건설시장에 진출하여 수많은 공사를 수주하고 성공적으로 완수한 사건이다. 1973년의 제1차 석유파동 이후,사우디 등 중동 국가들이 풍부한 오일 달러로 사회간접자본의 건설에 나섰는데 한국 건설업체들이 그 국가들의 도로, 항만, 주택, 플랜트 건설 시장에 적극 참여하여 수많은 공사를 수주하고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외화를 획득하고 인력 및 기술 개발과 국제 경영 노하우 획득, 국가 브랜드 상승의 성과를 거두었다.
정의
1973년, 석유파동(石油波動) 이후 한국 건설업체들이 중동 국가들의 오일 달러를 벌기 위해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에 그 건설시장에 진출하여 수많은 공사를 수주하고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외화 획득에 크게 이바지한 사건.
발단
경과 및 결과
해외 건설 수주액은 1965~1973년의 9년간 총 4억 2270만 달러였으나, 1974~1981년의 8년간 434억 6600만 달러였고, 중동 건설 수주액은 그 94%나 되었다. 같은 시기 중동 건설 수주액은 수출액의 절반 가까이에 달하여, 중동 건설 진출이 석유파동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 해외에 송출된 건설 인력도 급증하여 1979년에는 10만 명을 넘었고 1981~1983년간에는 매년 15만 명을 넘었다. 다만, 1977년의 사상 최초 경상수지 흑자와 같이 해외 부문의 통화 증발로 인플레가 생기고 인력이 부족해지는 사태로 인해 국내 노동 임금이 급등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오원철, 『에너지 정책과 중동건설』 (한국형경제연구소, 1997)
논문
- 심의섭, 정성화 엮음, 「70년대 한국 건설업의 중동진출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박정희 시대와 중동건설』 1, 선인, 2014)
- 조수종, 정성화 엮음, 「70년대 중동진출에 대한 재조명」 (『박정희 시대와 중동건설』 1, 선인, 201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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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1948년의 이스라엘 독립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의 여러 나라 사이에 벌어진 네 차례의 전쟁. 1979년에 미국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30년간의 전쟁 상태가 끝났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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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자국의 영토 및 영해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나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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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경제 활동이 일반적으로 침체되는 상태. 물가와 임금이 내리고 생산이 위축되며 실업이 늘어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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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산업 기계, 공작 기계, 전기 통신 기계 따위의 종합체로서의 생산 시설이나 공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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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통화량이 팽창하여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계속적으로 올라 일반 대중의 실질적 소득이 감소하는 현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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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햇볕 때문에 뜨거워진 모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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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산유국이 원유를 팔아서 벌어들인 잉여 외화. 달러 이외의 외화를 포함하여 오일 머니(money)라고도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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