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사진관은 사진사 박만달이 1930년 서울의 종로 관철동에 개업해서 11년간 운영한 사진관이다. 개업 이후 사진관의 규모나 시설이 남촌의 일본인 사진관들과 경쟁을 할 만큼 관주의 뛰어난 사진술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박만달이 오랜 동안 연구해온 채광법을 사용해 고품격의 인물사진을 보급하고자 했다.
박만달은 1917년부터 대구에서 애선사진관(愛鮮寫眞館)을 설립해 운영했다. 조선을 사랑한다는 의미의 명칭이었다. 박만달은 사진관 운영 중 선진적인 사진술 습득을 위해 일본을 자주 다니면서 도쿄에 있던 고니시로쿠[小西六]사진학교 등에 유학하기도 했다.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박만달은 1929년 영업장을 서울로 옮겼다. 지금의 서울 중구 정동에 애선사진관(愛鮮寫眞館)을 재개업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다음 해인 1930년 박만달은 경성사진사협회에 가입하고 협회 회원들과 교류하면서 독립과 문화운동에 눈을 뜨고, 한국인 사진사들이 주로 영업을 하던 종로로 사진관을 이전했다.
종로의 관철동 신신백화점 뒤편 종로경찰서 앞에 사진관을 차린 박만달은 사진관 이름을 독립(獨立)사진관으로 정했다. 그리고 대대적인 광고를 내면서 영업을 시작했다. 1930년 11월 25일자 『조선일보』에는 다음과 같이 사진관 광고가 실렸다.
“개업피로(11월 25일부터) 사진도 예술의 부분이 되었고 문화생활에 반드시 없지 못할 것이 되었습니다. 본인이 다년간 일본에서 사진술을 연구하온 결과 채광응용법을 세계적으로 신발명하여 확실한 자신으로써 개성미, 상상미, 자연미 등 그윽한 미를 찾아 가장 예술적으로 촬영하게 되오니 일차 시사해 보시압. 본관에서는 개업에 당하와 자축과 감사를 표키 위하여 조기 규정 하에서 기념품을 진정합니다. 一, 11월 25일부터 3주간 왕림하시는 손님마다 기념품을 진정합니다. 기념품은 종로 유창(攸昌)상회에 진열함. 이백원 기념품 진정. 종로 네거리 전 재판소 앞 전광 2, 123번 獨立寫眞舘 (前 愛鮮寫眞舘) 사진사 박일남(만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탄압의 상징인 종로경찰서 부근에 '독립'이란 상호를 달고 영업하자 자연스럽게 일본 경찰과 충돌이 잦았다. 박만달의 부인이 당시 애국여성단체인 조선부인회장을 지내고 있어 요시찰 대상으로 꼽혔던 인물이기도 해서 갈등은 더 증폭되었다. 경찰 측이 “상호를 바꾸라”고 하면 일본인 단골손님까지 드나드는 영업장의 상호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맞서면서 끝내 고집을 꺽지 않았다고 한다. 독립사진관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독립이란 이름을 고수하면서 해방이 될 때까지 영업을 지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