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가례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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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곡사는 18세기 말에 다산 정약용이 이익의 『가례질서』를 편찬했던 사찰이다. 고려시대 이래 석암사로 불리다가 1794년에 경헌과 각준이 대웅전을 중수하고 사찰명을 봉곡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약용의 글에서는 봉곡사와 석암사라는 명칭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봉수산 봉곡사 (鳳首山 鳳谷寺)
봉곡사는 18세기 말에 다산 정약용이 이익의 『가례질서』를 편찬했던 사찰이다. 고려시대 이래 석암사로 불리다가 1794년에 경헌과 각준이 대웅전을 중수하고 사찰명을 봉곡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약용의 글에서는 봉곡사와 석암사라는 명칭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예기집설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예기집설』에서 불분명하거나 난해한 부분을 보완한 예서이다. 1권 1책의 필사본으로, 정확한 편찬 및 간행 경위는 확인할 수 없다. 『예기집설』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중국과 조선의 예서로 고증하고, 이를 근거로 안설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정리하였다. 특히 상례와 관련된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례』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저술된 예서라고 할 수 있다.
예기집설보 (禮記集說補)
『예기집설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예기집설』에서 불분명하거나 난해한 부분을 보완한 예서이다. 1권 1책의 필사본으로, 정확한 편찬 및 간행 경위는 확인할 수 없다. 『예기집설』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중국과 조선의 예서로 고증하고, 이를 근거로 안설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정리하였다. 특히 상례와 관련된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례』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저술된 예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