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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창(昭陽江倉)은 조선시대 북한강 중상류 지역의 세곡을 보관, 수송하기 위하여 춘천에 설치된 조창(漕倉)이다. 조선 왕조는 전국에서 수취된 재원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하여 수로와 해로의 요충지에 조창을 설치했는데,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춘천에는 소양강창이 설치되었다. 소양강창은 춘천을 비롯하여 홍천, 인제, 양구, 낭천 등 5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한 다음 선박을 통해 서울의 경창(京倉)으로 운반하였다.
소양강창 (昭陽江倉)
소양강창(昭陽江倉)은 조선시대 북한강 중상류 지역의 세곡을 보관, 수송하기 위하여 춘천에 설치된 조창(漕倉)이다. 조선 왕조는 전국에서 수취된 재원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하여 수로와 해로의 요충지에 조창을 설치했는데,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춘천에는 소양강창이 설치되었다. 소양강창은 춘천을 비롯하여 홍천, 인제, 양구, 낭천 등 5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한 다음 선박을 통해 서울의 경창(京倉)으로 운반하였다.
광흥창(廣興倉)은 조선시대에 관리의 녹봉을 관장하던 호조 소속 정4품 아문이다. 광흥창의 연원은 고려 말 좌창에서 찾을 수 있다. 광흥창의 규모는 점점 확대되어 1470년(성종 1)에는 풍저창의 강창을 합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광흥창은 상당한 재원을 보유하였는데, 18세기 광흥창의 재원은 호조 내 8개 기관 중에서 3번째로 가장 많았다.
광흥창 (廣興倉)
광흥창(廣興倉)은 조선시대에 관리의 녹봉을 관장하던 호조 소속 정4품 아문이다. 광흥창의 연원은 고려 말 좌창에서 찾을 수 있다. 광흥창의 규모는 점점 확대되어 1470년(성종 1)에는 풍저창의 강창을 합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광흥창은 상당한 재원을 보유하였는데, 18세기 광흥창의 재원은 호조 내 8개 기관 중에서 3번째로 가장 많았다.
『월인천강지곡 권상』은 조선전기 제4대 왕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모아 한글로 편찬한 시가집이다. 『석보상절』과 함께 합편되어 『월인석보』로 간행되었다. 수양대군이 『석보상절』을 지어 올리자 이를 본 세종이 책의 내용에 맞추어 부처의 일생을 찬탄하는 영웅서사시로 읊은 것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권상에 실린 노래가 모두 194곡이므로 3권을 모두 합하면 580여 곡의 노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글을 위주로 하고 한자를 협주로 표기한 최초의 한글활자본이자 「용비어천가」 다음으로 오래된 자료로서 장편서사시의 선구적 작품이기도 하다.
월인천강지곡 권상 (月印千江之曲 卷上)
『월인천강지곡 권상』은 조선전기 제4대 왕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모아 한글로 편찬한 시가집이다. 『석보상절』과 함께 합편되어 『월인석보』로 간행되었다. 수양대군이 『석보상절』을 지어 올리자 이를 본 세종이 책의 내용에 맞추어 부처의 일생을 찬탄하는 영웅서사시로 읊은 것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권상에 실린 노래가 모두 194곡이므로 3권을 모두 합하면 580여 곡의 노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글을 위주로 하고 한자를 협주로 표기한 최초의 한글활자본이자 「용비어천가」 다음으로 오래된 자료로서 장편서사시의 선구적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