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개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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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75∼477년이다. 왕자로 있을 때 아버지 개로왕을 보좌하여 최고관직인 상좌평을 역임했다. 475년(개로왕 21) 고구려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자, 동맹국 신라에 구원을 청하러 파견되었다. 구원병 1만 명을 얻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도성이 함락되어 파괴되고 개로왕은 살해된 뒤였다. 국난의 상황에서 즉위한 문주왕은 웅진천도를 단행하여 새로운 출발을 시도했으나 난립한 귀족 파벌간의 쟁투는 더 심각해졌고, 결국 재위 3년 만에 정권을 장악한 병관좌평 해구가 보낸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문주왕 (文周王)
문주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75∼477년이다. 왕자로 있을 때 아버지 개로왕을 보좌하여 최고관직인 상좌평을 역임했다. 475년(개로왕 21) 고구려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자, 동맹국 신라에 구원을 청하러 파견되었다. 구원병 1만 명을 얻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도성이 함락되어 파괴되고 개로왕은 살해된 뒤였다. 국난의 상황에서 즉위한 문주왕은 웅진천도를 단행하여 새로운 출발을 시도했으나 난립한 귀족 파벌간의 쟁투는 더 심각해졌고, 결국 재위 3년 만에 정권을 장악한 병관좌평 해구가 보낸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삼국시대 때, 백제의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 장사로서 남제에 파견된 사신.
고달 (高達)
삼국시대 때, 백제의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 장사로서 남제에 파견된 사신.
아차산성(阿且山城)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 남단에 있는 둘레 1km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발굴 조사 결과, 아차산성은 7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되었고, '북한산성(北漢山城)'이라 적힌 명문 기와가 발견되어 신라 진평왕 대인 604년에 재설치된 신라 북한산주(北漢山州)의 치소라는 것이 밝혀졌다. 아차산성은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한 아차성(阿且城), 고구려 온달 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아단성(阿旦城) 등으로 알려졌으나 이와 관련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아차산성 (阿且山城)
아차산성(阿且山城)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 남단에 있는 둘레 1km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발굴 조사 결과, 아차산성은 7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되었고, '북한산성(北漢山城)'이라 적힌 명문 기와가 발견되어 신라 진평왕 대인 604년에 재설치된 신라 북한산주(北漢山州)의 치소라는 것이 밝혀졌다. 아차산성은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한 아차성(阿且城), 고구려 온달 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아단성(阿旦城) 등으로 알려졌으나 이와 관련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백제의 제21대 개로왕의 아우이자 제24대 동성왕과 제25대 무령왕의 아버지로 추정되며, 정로장군 좌현왕을 제수받은 백제의 왕족·귀족.
여곤 (餘昆)
백제의 제21대 개로왕의 아우이자 제24대 동성왕과 제25대 무령왕의 아버지로 추정되며, 정로장군 좌현왕을 제수받은 백제의 왕족·귀족.
삼국시대 백제의 제21대 개로왕에게 관군장군우현왕을 제수 받은 왕족. 정치인.
여기 (餘紀)
삼국시대 백제의 제21대 개로왕에게 관군장군우현왕을 제수 받은 왕족. 정치인.
삼국시대 백제에서 고구려에 망명하여 대로를 역임한 관리. 대신.
재증걸루 (再曾桀婁)
삼국시대 백제에서 고구려에 망명하여 대로를 역임한 관리. 대신.
자비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58~479년이며, 눌지마립간 재위시 마련된 왕위의 부자상속제에 따라 즉위했다. 왕경인 경주의 행정체계를 개편해 지배체제를 강화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백제와의 공수동맹을 더욱 강화했다. 474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하자 원병을 파견했으나 군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백제의 한산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했다. 이후 고구려가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의 북변을 공략하자 서북변 일대에 산성을 축조하여 대비했고, 수차례에 걸친 왜의 침략도 모두 격퇴했다.
자비마립간 (慈悲麻立干)
자비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58~479년이며, 눌지마립간 재위시 마련된 왕위의 부자상속제에 따라 즉위했다. 왕경인 경주의 행정체계를 개편해 지배체제를 강화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백제와의 공수동맹을 더욱 강화했다. 474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하자 원병을 파견했으나 군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백제의 한산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했다. 이후 고구려가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의 북변을 공략하자 서북변 일대에 산성을 축조하여 대비했고, 수차례에 걸친 왜의 침략도 모두 격퇴했다.
웅진천도는 475년 백제가 고구려에게 한성을 빼앗기고 웅진(충청남도 공주)으로 도읍지를 옮긴 사건이다. 475년 9월 장수왕이 이끄는 3만의 고구려군은 한성을 불시에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살해한 후 주민 8천 명을 포로로 잡고 곧바로 철수했다. 왕자 문주가 동맹국 신라의 구원병 1만 명을 이끌고 도착했으나 한성은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다. 문주는 폐허에서 왕위에 오른 후 그해 10월 웅진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천도를 단행했다. 백제 역사상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추동한 사건이다. 천도 후 100여 년이 지나 무령왕이 집권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웅진천도 (熊津遷都)
웅진천도는 475년 백제가 고구려에게 한성을 빼앗기고 웅진(충청남도 공주)으로 도읍지를 옮긴 사건이다. 475년 9월 장수왕이 이끄는 3만의 고구려군은 한성을 불시에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살해한 후 주민 8천 명을 포로로 잡고 곧바로 철수했다. 왕자 문주가 동맹국 신라의 구원병 1만 명을 이끌고 도착했으나 한성은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다. 문주는 폐허에서 왕위에 오른 후 그해 10월 웅진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천도를 단행했다. 백제 역사상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추동한 사건이다. 천도 후 100여 년이 지나 무령왕이 집권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