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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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읍지』는 1899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 때 현에서 군으로 승격된 사실을 기록하는 등 19세기 후반까지의 지역 정보를 첨삭한 점이 눈에 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가 되면서 새롭게 조정된 40개의 항목에 따라 19세기 후반의 지역 정보를 자세하게 수록하였다.
고창군읍지 (高敞郡邑誌)
『고창군읍지』는 1899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 때 현에서 군으로 승격된 사실을 기록하는 등 19세기 후반까지의 지역 정보를 첨삭한 점이 눈에 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가 되면서 새롭게 조정된 40개의 항목에 따라 19세기 후반의 지역 정보를 자세하게 수록하였다.
『무장현읍지』는 조선 후기 전라도 무장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 8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체재는 『여지도서』와 동일하다. 기존 읍지와 비교하여 성씨 항목이 간략하며, 제영과 진보 항목이 없다. 『호남읍지』에 수록된 「무장읍지」, 1899년의 『무장군읍지』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당시 무장현의 다양한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무장현읍지 (茂長縣邑誌)
『무장현읍지』는 조선 후기 전라도 무장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 8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체재는 『여지도서』와 동일하다. 기존 읍지와 비교하여 성씨 항목이 간략하며, 제영과 진보 항목이 없다. 『호남읍지』에 수록된 「무장읍지」, 1899년의 『무장군읍지』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당시 무장현의 다양한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남북국시대 때, 신라의 사신으로서 중국을 내왕하던 중 후백제 측에 붙잡혀 관직을 가졌으며, 고려와 후백제의 싸움에서 포로로 끌려가 고려의 수병부령 등을 역임한 신라 말 고려 초의 관리.
김악 (金岳)
남북국시대 때, 신라의 사신으로서 중국을 내왕하던 중 후백제 측에 붙잡혀 관직을 가졌으며, 고려와 후백제의 싸움에서 포로로 끌려가 고려의 수병부령 등을 역임한 신라 말 고려 초의 관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을 중심으로 부안ㆍ고창 지역의 옛 지명.
고사부리 (古沙夫里)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을 중심으로 부안ㆍ고창 지역의 옛 지명.
고창전투는 후삼국시대 고창군에서 경순왕 4년(930년)에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두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고창군은 현재 안동 지역으로 고려와 후백제의 격전지였다. 이미 공산전투에서 고려에 대승을 거둔 후백제 견훤은 고창군까지 도달하여 고려 왕건과 싸웠으나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하였다. 왕건의 승리는 고창군 재지호족의 적극적 협조로 가능하였다. 패배한 후백제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인근 고을과 동해안 일대 성주가 고려에 귀부하였고 고창군은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고창전투 (古昌戰鬪)
고창전투는 후삼국시대 고창군에서 경순왕 4년(930년)에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두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고창군은 현재 안동 지역으로 고려와 후백제의 격전지였다. 이미 공산전투에서 고려에 대승을 거둔 후백제 견훤은 고창군까지 도달하여 고려 왕건과 싸웠으나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하였다. 왕건의 승리는 고창군 재지호족의 적극적 협조로 가능하였다. 패배한 후백제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인근 고을과 동해안 일대 성주가 고려에 귀부하였고 고창군은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옛 지명.
일계 (日谿)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옛 지명.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옛 지명.
일직 (一直)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옛 지명.
해리염전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와 심원면 고전리 및 만돌리 일대 간척지에 1949년 삼양사가 조성한 천일염전이다. 일명 삼양염전으로 불린다. 삼양사는 1947년 2월부터 염전 축조 공사를 시작하여, 1948년 12월에 1차 축조 공사를 완료하고, 1949년부터 천일염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관리 사무소가 해리면에 있어 해리염전으로 불린다. 2002년 일부가 매각되어 골프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2021년 고창군이 나머지 지역을 매입하였다.
해리염전 (海里鹽田)
해리염전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해리면 동호리와 심원면 고전리 및 만돌리 일대 간척지에 1949년 삼양사가 조성한 천일염전이다. 일명 삼양염전으로 불린다. 삼양사는 1947년 2월부터 염전 축조 공사를 시작하여, 1948년 12월에 1차 축조 공사를 완료하고, 1949년부터 천일염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관리 사무소가 해리면에 있어 해리염전으로 불린다. 2002년 일부가 매각되어 골프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2021년 고창군이 나머지 지역을 매입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지역에 전승되는 농악.
고창농악 (高敞農樂)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지역에 전승되는 농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