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공민왕_폐위_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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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군은 고려 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셋째 아들인 왕자이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으로 도망해 있다가 1362년(공민왕 11) 원에서 공민왕을 폐위하고자 했을 때 그를 대신해 고려 국왕에 세워졌다. 고려 국왕에 오르기 위해 최유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군에 패하고 원으로 돌아갔다.
덕흥군 (德興君)
덕흥군은 고려 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셋째 아들인 왕자이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으로 도망해 있다가 1362년(공민왕 11) 원에서 공민왕을 폐위하고자 했을 때 그를 대신해 고려 국왕에 세워졌다. 고려 국왕에 오르기 위해 최유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군에 패하고 원으로 돌아갔다.
최유는 고려 후기 원에서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옹립을 모의한 주모자이다.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충혜왕을 수행하여 원에 간 공으로 귀국 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원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사망했을 때 충정왕을 호종하여 그 즉위에 공이 있었다. 이후 포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다시 원으로 갔다. 기황후를 설득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1362년(공민왕 11) 주살되었다.
최유 (崔濡)
최유는 고려 후기 원에서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옹립을 모의한 주모자이다.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충혜왕을 수행하여 원에 간 공으로 귀국 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원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사망했을 때 충정왕을 호종하여 그 즉위에 공이 있었다. 이후 포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다시 원으로 갔다. 기황후를 설득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1362년(공민왕 11)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