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기독교_농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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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수는 일제강점기 조선예수교장로회 농촌부 총무를 역임하는 등 기독교 농촌운동을 전개한 기독교 목사이다. 1917년 숭실중학 재학 중에 항일민족운동에 참여하였고, 삼일운동 때 옥고를 치렀다. 1923년 숭실전문학교 재학 중 기독교농촌연구회를 조직한 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 목사가 된 후 조선예수교장로회 농촌부 총무로 일했다. 해방 후 대전 농민학원과 일산 삼애농업기술학원을 설립하였다.
배민수 (裵敏洙)
배민수는 일제강점기 조선예수교장로회 농촌부 총무를 역임하는 등 기독교 농촌운동을 전개한 기독교 목사이다. 1917년 숭실중학 재학 중에 항일민족운동에 참여하였고, 삼일운동 때 옥고를 치렀다. 1923년 숭실전문학교 재학 중 기독교농촌연구회를 조직한 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 목사가 된 후 조선예수교장로회 농촌부 총무로 일했다. 해방 후 대전 농민학원과 일산 삼애농업기술학원을 설립하였다.
일제강점기 선천YMCA 총무, 중앙YMCA 간사 및 이사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계병호 (桂炳鎬)
일제강점기 선천YMCA 총무, 중앙YMCA 간사 및 이사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박학전은 해방 이후 서울시 사회국장, 인천시장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목사, 농촌운동가이다. 1905년 평안남도 안주군 출생으로, 평양 장로회신학교 입학 후 조만식의 지도 아래 농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3년 일본에서 종교교육과 사회사업을 공부한 후 이듬해 귀국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농사강습회 개최, 농촌지도자 양성, 협동조합·소비조합 결성 등 다양한 농촌운동에 힘썼다.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이듬해 농우회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해방 후 서울시 사회국장, 인천시장, 국제인권옹호회 경기도 본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1972년에 사망하였다.
박학전 (朴鶴田)
박학전은 해방 이후 서울시 사회국장, 인천시장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목사, 농촌운동가이다. 1905년 평안남도 안주군 출생으로, 평양 장로회신학교 입학 후 조만식의 지도 아래 농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3년 일본에서 종교교육과 사회사업을 공부한 후 이듬해 귀국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농사강습회 개최, 농촌지도자 양성, 협동조합·소비조합 결성 등 다양한 농촌운동에 힘썼다.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이듬해 농우회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해방 후 서울시 사회국장, 인천시장, 국제인권옹호회 경기도 본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1972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