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기호흥학회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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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흥학회는 1908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계몽단체이다. 민족자강을 위한 교육계몽운동을 목적으로 정영택 등 기호지방 인사 105명이 창립하였다. 1907년 대한자강회가 강제 해산된 이후, 교육진흥을 위한 여러 단체가 지역별로 설립되었다. 기호흥학회는 흥학운동의 일환으로 학교 설립을 추진하였고, 교사 양성을 위한 기호학교를 설립하였다. 1909년 7월까지 『기호흥학회월보』를 12호까지 발간하였다. 회보의 내용이 국권 회복에 관계된다고 하여 압수되기도 하였다. 1910년 9월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기호흥학회 (畿湖興學會)
기호흥학회는 1908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계몽단체이다. 민족자강을 위한 교육계몽운동을 목적으로 정영택 등 기호지방 인사 105명이 창립하였다. 1907년 대한자강회가 강제 해산된 이후, 교육진흥을 위한 여러 단체가 지역별로 설립되었다. 기호흥학회는 흥학운동의 일환으로 학교 설립을 추진하였고, 교사 양성을 위한 기호학교를 설립하였다. 1909년 7월까지 『기호흥학회월보』를 12호까지 발간하였다. 회보의 내용이 국권 회복에 관계된다고 하여 압수되기도 하였다. 1910년 9월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안종화는 개항기 법부참서, 세자시강원시독, 중추원의관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역사학자이다. 1860년(철종 11)에 태어나 1924년에 사망했다. 김정희와 홍직필의 문하에서 수학한 아버지 안기원의 영향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1878년 『동사절요』의 토대가 되는 『동사취요』를 저술하였는데, 단군을 최초의 성인(聖人)으로 인식하고,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대한자강회와 기호흥학회 활동을 하면서 『초등본국역사』·『초등만국지리』·『초등대한지리』 등의 역사·지리 교과서를 편찬하였다.
안종화 (安鍾和)
안종화는 개항기 법부참서, 세자시강원시독, 중추원의관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역사학자이다. 1860년(철종 11)에 태어나 1924년에 사망했다. 김정희와 홍직필의 문하에서 수학한 아버지 안기원의 영향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1878년 『동사절요』의 토대가 되는 『동사취요』를 저술하였는데, 단군을 최초의 성인(聖人)으로 인식하고,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대한자강회와 기호흥학회 활동을 하면서 『초등본국역사』·『초등만국지리』·『초등대한지리』 등의 역사·지리 교과서를 편찬하였다.
대한제국기 한성사범학교 교원, 한성사범학교 물리 교관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다. 1897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공립소학교 · 관립소학교 · 한성사범학교 · 융희학교에서 교원 · 물리 교관 · 교감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시천교에 입문하여 종교인으로 활동하다가 1919년 5월 사망하였다. 1909년 4월 『교남교육회잡지(嶠南敎育會雜誌)』 제1권 제1호가 발행될 당시에 편집 겸 발행을 맡았다. 이 시기에 흥사단(興士團)에도 가입하여 교과서 개발에 관여하였다.
박정동 (朴晶東)
대한제국기 한성사범학교 교원, 한성사범학교 물리 교관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다. 1897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공립소학교 · 관립소학교 · 한성사범학교 · 융희학교에서 교원 · 물리 교관 · 교감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시천교에 입문하여 종교인으로 활동하다가 1919년 5월 사망하였다. 1909년 4월 『교남교육회잡지(嶠南敎育會雜誌)』 제1권 제1호가 발행될 당시에 편집 겸 발행을 맡았다. 이 시기에 흥사단(興士團)에도 가입하여 교과서 개발에 관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