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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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서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1919년에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노령의 대한국민의회나 상하이 임시정부와 거리를 두면서 무장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1930년대 후반에 소련 정부에 의하여 간첩 혐의로 복역하였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김광서 (金光瑞)
김광서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으로 복무하던 중 1919년에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노령의 대한국민의회나 상하이 임시정부와 거리를 두면서 무장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1930년대 후반에 소련 정부에 의하여 간첩 혐의로 복역하였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전봉준은 개항기 동학 접주, 동학농민군 대장 등을 역임한 지도자이다. 1855년(철종 6)에 태어나 1895년(고종 32)에 사망했다. 35세경 동학에 입교해 접주가 되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이 극심해 1894년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했고, 인근 접주들에게 사발통문을 보내 봉기를 호소하여 동학농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폐정개혁안이 성사되어 시정개혁에 전념하다가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구국의 기치 아래 다시 봉기했다. 남도접주로서 12만 농민군을 지휘하며 싸우다가 일본군과 정부군에 진압되었고, 피신 중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전봉준 (全琫準)
전봉준은 개항기 동학 접주, 동학농민군 대장 등을 역임한 지도자이다. 1855년(철종 6)에 태어나 1895년(고종 32)에 사망했다. 35세경 동학에 입교해 접주가 되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이 극심해 1894년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했고, 인근 접주들에게 사발통문을 보내 봉기를 호소하여 동학농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폐정개혁안이 성사되어 시정개혁에 전념하다가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구국의 기치 아래 다시 봉기했다. 남도접주로서 12만 농민군을 지휘하며 싸우다가 일본군과 정부군에 진압되었고, 피신 중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