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성단(血誠團)은 1920년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추풍(秋風)에서 조직된 항일무장단체이다. 강국모(姜國模), 김종화(金鍾和) 등이 서간도(西間島)에서 이동해 온 독립단(獨立團) 부대원들을 기반으로 설립하였다. 채영(蔡英)을 사령관으로 추대하여 1920년 6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20년 10월 아누치노로 이동해 수청(水淸) 군대, 신민단(新民團) 부대와 통합하였으나, 1921년 가을 다시 추풍으로 돌아갔다.
1920년 1월 러시아 연해주 추풍의 한인마을 재피거우에서 3 · 1운동 이후 오오츠크의 한인들이 사금(沙金)을 모아 마련한 자금을 가지고 온 강국모, 김종화 등이 서간도로부터 연해주로 이동해 그로데코보에 와 있던 독립단 부대원 80여 명을 기본으로 조직하였다.
5월 채영이 신민단 부대원 15명을 데리고 와서 결합하였다. 혈성단은 그에게 군사 부문의 책임을 맡겼다. 단장 강국모, 사령관 채영, 참모장 한일제(韓一齊), 재무장 왕채호 등의 간부진을 중심으로 보병 4소대와 기병 1소대, 모연대, 적십자대, 피복대 등으로 이루어진 혈성단 부대가 재조직되었다. 병력은 350여 명에 달하였다.
6월 솔밭관 공산당부대, 신민단 부대와 연합하여 재피거우 부근 시베창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중국 마적(馬賊)인 훙후즈[紅鬍賊]에 맞서 싸우고, 일본군의 후방을 교란하며 소규모 전투를 계속 전개하였다.
10월 일본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추풍을 떠나 러시아 빨치산 부대 총사령부가 있는 아누치노로 이동하였다. 11월 추구예프계곡의 한인 마을 트레치이-푸진에서 한창걸(韓昌傑)의 수청 군대, 박경철의 신민단 부대와 통합하였다. 통합부대의 총사령관은 채영이었다.
1921년 초, 채영과 독립단 부대가 자유시(自由市)로 떠나자 김경천(金擎天)을 새로운 사령관으로 초빙하여 '연해주한인총회(沿海州韓人總會)'를 조직하였다. 병력은 700~800명가량이었다. 그러나 부대 운영을 둘러싸고 김경천과 강국모, 한창걸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서 통합부대는 해산되고, 강국모는 몇몇 동지들과 함께 추풍 다부하(多富河)로 돌아가서 혈성단을 재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