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때, 전라북도 옥구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출옥 이후에도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주요 활동
그 뒤 고향인 전라북도 옥구군으로 귀향하였다. 1919년 3월 25일 자택에서 진장권(陳壯權), 김석종(金錫宗), 황봉규(黃琫奎), 최한례(崔翰澧) 등과 함께 3월 29일 임피시장에서 만세운동할 것을 계획하였다. 3월 28일 진장권의 집에서 태극기 200매를 제작하였다. 3월 29일에는 김석종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독립만세시위 전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으나, 공소를 제기하여 6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출옥 후 1924년 청년들을 규합하여 비밀결사인 삼성구락부(三省具樂部)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계속하다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6(국가보훈처, 1973)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신문 · 잡지
- 『동아일보』(1925. 1. 12.)
판결문
-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19. 6. 20.)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주석
-
주1
: 전라북도 서북쪽에 있던 군. 1995년 1월 군산시에 통합되면서 폐지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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