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고창군 고창면의 면서기로 근무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고창군에서 3월 21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창군 청년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면의 면서기로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손병희 외 수십 명의 이름이 적힌 독립선언서와 독립운동 창가(唱歌) 인쇄물을 각각 1장씩 얻어 이를 등사하였다. 향리의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3월 17일 밤, 면사무소에서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 7~8장과 독립운동 창가 50여 장을 인쇄하였다. 3월 18일 면사무소에서 인쇄물을 오동균(吳東均), 김창규(金昌奎) 등에게 배포하도록 하면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3월 19일 고창면 장날을 기하여 시위운동을 계획했지만 무산되었다.
3월 21일 오전 11시경 일부 학생들과 함께 100여 명의 군중 앞에서 만세운동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연설한 뒤, 선두에 서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 도중 일본 경찰의 제지를 받았지만, 더욱 기세를 올려 고창군청으로 행진하여 군수와 군청 직원들에게도 운동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상고했지만,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형을 마치고 나온 뒤 1926년까지 고창군 청년회장으로 활약하며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