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8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군무부(軍務部) 산하에 서간도(西間島) 지방사령부로 광복군사령부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약 1개월 앞선 7월 서간도에는 이미 광복군총영이 조직되어 있었다. 이후 서간도에서 실제 활동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방사령부는 광복군총영이었다.
1920년 7월 서간도 안동현(安東縣)에서는 이탁(李鐸)과 오동진(吳東振)이 주도하는 광복단(光復團)을 중심으로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이 통합하여 광복군총영이 조직되었다. 조직 편제는 총영장(總營長) 아래에 군사부 · 참의부 · 재정부의 3부를 두었고, 참의부 아래에 군영을 두었다.
광복군총영의 대원은 자체 군사총회를 통해서 선정하였다. 초기 선출된 대원은 알 수 없으나, 1922년 8월 제2회 정기대회에서 개선(改選)된 대원은 총영장에 오동진, 군사부장(軍事部長) 겸 참모부장(參謀部長)에 백남준(白南俊), 경리부장(經理部長)에 이관린(李寬麟)이었다.
또한, 국내의 천마산대(天馬山隊)[E0055852]를 철마별영(鐵馬別營)으로 하여 별영장(別營長)에 최시흥(崔時興)을 임명하였으며, 벽동(碧潼) 파저강(波瀦江) 연안의 무장 단체를 벽파별영(碧波別營)으로 하여 별영장에 김영화(金永和)를 임명하였다.
광복군총영은 평안도 안주, 신의주, 선천 등지에서 조선총독부 기관과 경찰서를 습격하는 국내 진공 작전을 벌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자적인 활동을 하였다. 1922년 서간도 독립군 단체의 통일 기관으로 대한통의부(大韓統軍府)가 조직되면서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