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의주 출신. 삭주에서 마부(馬夫)로 있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최주천(崔柱天)·박응백(朴應伯) 등과 함께 천마산(天摩山)을 근거로 천마산대(天摩山隊)를 조직, 500여명의 청년을 규합하여 의주·구성·삭주·창성 등지에서 경찰관 주재소와 관청 10여개소를 습격, 파괴하였다.
1920년 일본군 대부대의 공격을 받게 되자 대원들을 만주로 이동시키고 뒤따라가다가 봉천성 임강현(奉天省臨江縣)에서 중국경찰에 잡혔다.
이때 임시정부의 노력으로 중국정부에서 석방하기로 결정되어 경찰서 문앞을 나오다가 신의주경찰서 경부(警部) 이성근(李聖根)의 부하 김덕기(金德基)에 의하여 다시 잡혀 국내로 압송되었다. 1925년 평양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