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43년에 육당 최남선이 문화교류사의 관점에서 간행한 한국통사.
저자와 출간경위
이후 한일문화동원론(韓日文化同原論)을 제기하며 친일의 길을 걸어, 1938년 『조선사(朝鮮史)』 37권의 편찬이 완료되자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 1939년 만주국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하였고, 1943년 11월에는 이광수와 함께 동경으로 가서 학도병 지원 연설을 하였다.
1930년대 내내 조선의 역사를 연구해 온 최남선은 학도병 지원 연설을 가기 한 달 전인 1943년 10월 『고사통』을 출간하였다. ‘독립운동을 하는 셈 치고’ 이 책을 출판한다고 했지만, 이 책이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최남선의 친일 경력이 작용하였다.
당시는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집필을 단념하고 은둔해 있을 만큼 황민화 정책이 극에 달해 있어 ‘조선 역사’라는 말조차 쓰지 못하고 ‘고사통’이란 제목을 달아야 하였다. 『고사통』은 당시 한국어로 출간된 유일한 한국 역사서로, 발간 석 달만에 3만 부가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구성과 내용
1943년 2월 15일에 싱가포르가 일제에 함락된 것을 기념하여 출판한다고 밝힌 서문에서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역사가 필요하다고 하며, 대동아전쟁의 시대이므로 골격과 사료에서 일대 변통을 하겠다고 하였다. 실제로 『고사통』은 『조선역사강화』를 문화사 중심으로 대폭 변화시켰다.
『고사통』은 『조선역사강화』의 두 배 분량으로 100장 300절로 구성되었다. 『조선역사강화』보다 추가된 장은 시대로는 고려와 조선에 집중되어 있고, 내용으로는 대부분 문화와 문화 교류에 관한 사항들이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지역의 인적 교류, 문물 교류에 관한 장들을 집중적으로 추가하였다.
중국과 북방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유구, 서역, 포르투갈, 스페인, 아라비아, 태국 등과의 인적 교류 내용도 포함되었다. 전 시대를 통해 한국 문화와 세계 문화의 교류, 즉 한국 문화가 세계 문화에 미친 영향과 세계 문화가 한국 문화에 미친 영향을 강조하였다.
특히 고려시대에 이루어진 세계적 문물 교류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고려는 『조선역사강화』에서는 가장 폄하되었지만, 『고사통』에서는 문화 교류사적 입장에서 가장 크게 평가되었다.
원 지배기의 문화 교류 역시 크게 평가하여 원을 통해 들어온 아라비아 문물이 조선 전기 세종조 문화를 일군 바탕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근세에도 문화 교류사적인 서술이 많아졌는데, 임진왜란도 한일 문화 교류와 동서 문화 교류의 통로로 평가하였다.
『고사통』은 『조선역사강화』의 용어와 내용을 많이 바꾸었다. ‘민족의 자각’을 ‘삼국의 정립’으로 바꾸고, ‘왜구(倭寇)’도 ‘해구(海寇)’로 바꾸었다. 근대 계몽운동의 반일 투쟁을 서술한 ‘민간의 신운동’을 ‘문화운동’으로 바꾸고 ‘국채보상운동’을 ‘문학과 종교’로 대체하였다. 근대의 항일 투쟁에 관한 서술은 모두 삭제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유시현, 『최남선 연구: 제국의 '근대'와 식민지의 '문화'』(역사비평사, 2009)
- 이영화, 『최남선의 역사학』(경인문화사, 2003)
- 이만열, 『한국근대역사학의 이해』(문학과 지성사, 1981)
- 김용섭, 『한국근대역사학의 성립』(지성, 197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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