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4월 20일 중국 상하이에서 유자명(柳子明), 유기석(柳基石) 등이 조직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로, 만주사변 이후 중국 관내와 만주, 일본 그리고 조선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 운동가들이 상하이로 모여들어 가담하였다.
맹원(盟員)은 유자명, 유기석 외에 이회영(李會榮), 정화암(鄭華巖), 백정기(白貞基), 원심창(元心昌), 박기성(朴基成), 엄형순(嚴亨淳), 이규창(李圭昌), 이용준(李容俊), 유기문(柳基文), 이강훈(李康勳), 김성수(金聖壽), 오면직(吳冕稙), 이하유(李何有), 이달(李達), 나월환(羅月煥), 김광주(金光州) 등이었다.
산하에 남화구락부(南華俱樂部)를 두고 기관지로 『남화통신(南華通信)』을 발행하였다. 또한, 중요 기념일마다 격문을 적고 발송, 배포하는 선전 활동을 하였다.
1930년 10월 중국의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국제적 의열 단체인 항일구국연맹(抗日救國聯盟)을 결성하였다. 항일구국연맹은 적의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 및 친일 분자 숙청, 항일 선전 활동 등을 실천하기 위한 직접 행동대로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을 조직하였다.
이회영과 정화암이 지휘한 흑색공포단이 실행한 대표적인 직접 행동은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공사 암살 시도가 있었다. 1933년 3월 17일 상하이의 육삼정(六三亭)이라는 식당에서 아리요시가 연회를 연다는 정보를 접한 남화연맹원들은 그를 암살하고자 백정기, 이강훈, 원심창 등 3인이 권총과 폭탄을 가지고 대기하였으나, 거사 실행 전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 외에도 1932년 이회영을 일제 경찰에 밀고한 이규서(李圭瑞)와 연충렬(延忠烈)을 사살하였으며, 1933년 일제 밀정 이종홍(李鐘洪), 옥관빈(玉觀彬)과 그의 형 옥성빈(玉成彬)을 사살하였다.
1935년에는 상하이 조선인거류민회(朝鮮人居留民會) 부회장인 이용로(李容魯)와 일제 밀정 이태서(李泰瑞)를 사살하였다. 또한, 중국인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난징[南京] 정부의 친일 외교부장 왕징웨이[王精衛] 저격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푸젠성[福建省] 샤먼[廈門]에서 일본 영사관을 폭파하였고, 톈진[天津]에서 일본군 병영과 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등 다른 계열 민족 운동 진영과 연대를 추진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혁명자연맹(朝鮮革命者聯盟)으로 개조하고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운동자동맹(朝鮮民族解放運動者同盟)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을 조직하고 산하의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를 통해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