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932년 11월 독립운동 근거지를 마련하고 일본군 사령관 등을 암살할 목적으로 만주로 가던 중 다롄〔大連〕에서 일경에 체포된 이회영이 여순감옥(旅順監獄)에서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하자 대일 항쟁의 전면에 나섰다. 이후 이회영의 만주행을 밀고한 연충열과 이규서를 비롯하여 친일 인사 7명을 처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3년 3월 오면직 · 원심창 · 백정기 · 이달(李達) · 김지강(金芝江) · 유기문(柳基文) · 엄순봉 등과 함께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행동 단체인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 B.T.P.)을 조직하여 일제 요인 및 친일파 암살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3월 17일 한국 독립운동 방해 공작을 펼치던 주중(駐中)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를 상하이 공동 조계(租界)의 일본계 고급 요리점에서 암살하려던 육삼정(六三亭) 의거에 가담하였이다. 그러나 이 의거 계획은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로 끝났고 백정기 · 이강훈 · 원심창 등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35년 1월 엄순봉 · 이달 · 정화암 · 김지강 등과 함께 친일 조선인 조상섭(趙尙燮)의 집을 습격하여 독립자금을 마련하려 하였다. 엄순봉 · 이달 · 김지강 등을 조상섭의 집으로 안내하여, 이들이 조상섭의 부인을 위협하여 금품을 탈취하게 하였다.
같은 해 3월에는 정화암과 협의한 후 엄형순과 함께 상하이 조선인거류민회(朝鮮人居留民會) 부회장과 고문을 역임한 친일파 이용로(李容魯)를 암살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사실이 발각되어 도피 중 중국 경찰에 체포된 후 상하이 일본 영사관에 인도되어 한국으로 압송되었다.
1936년 4월 경성복심법원에서 13년 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였으며, 이때 엄순봉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1939년 8월 마포형무소에서 항일 선전문을 제작하여 배포하였다가 가중처벌을 받았다. 광주형무소로 이감되었다가 1945년 8 · 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박환, 『식민지시대 한인아나키즘운동사』(선인, 2005)
- 이규창, 『운명의 여신』(보련각, 1992)
논문
- 박종연, 「일제 시기 이강훈의 민족운동과 六三亭의거」(『숭실사학』 32, 숭실대학교 숭실사학회, 2014)
- 황민호, 「일제하 재중한인 아나키스트 이규창의 민족운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 80,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4)
신문
- 『매일신보』(1937. 4. 16.)
- 『동아일보』(1936. 5. 10.)
- 『동아일보』(1936. 2. 19.)
- 『동아일보』(1936. 2. 1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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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중국 만주 지방에 있는 성. 성도(省都)는 장춘(長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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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중국 랴오둥반도(遼東半島)의 남쪽 끝에 있는 항만 도시. 1898년에 제정 러시아가 청나라로부터 조차(租借)해서 달리니(Dal’nii)라 이름 지었다. 1907년에 일본으로 조차권이 넘어가서 일본의 지배 아래 있다가, 제이 차 세계 대전 후 중국에 반환되었다. 둥베이(東北) 최대의 중화학 공업 지역이다. 면적은 1만 2000㎢.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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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19세기 후반에 영국, 미국, 일본 등 8개국이 중국을 침략하는 근거지로 삼았던, 개항 도시의 외국인 거주지. 외국이 행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하였으며, 한때는 28개소에 이르렀으나 제이 차 세계 대전 이후에 폐지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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