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중국 베이징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신채호(申采浩), 유자명(柳子明), 이회영(李會榮) 등이 조직한 다물단(多勿團)은 같은 해 상하이에서 배천택(裵天澤), 김동삼(金東三), 남형우(南亨佑), 한진산(韓震山) 등이 조직하여 베이징으로 옮겨온 국민당(國民黨)과 1924년 통합하였다. 명칭은 다물당(多勿黨)으로 하였고, 1925년 4월 베이징 마사묘(麻四廟)에서 조직 총회를 열었다. 단원은 50~60명이었다.
"옛 땅을 회복한다."는 뜻의 고구려 말인 다물은 용감(勇敢), 전진(前進), 쾌단(快斷) 등의 의미도 가지고 있고, "입을 다문다."는 뜻도 있다. 즉, 불언실행(不言實行)을 주지로 하여 밀정이라고 의심되는 사람을 처단하는 의열 투쟁을 목적으로 하였다.
다물단의 대표적인 의열 투쟁은 베이징의 거물 친일파 밀정 김달하(金達河) 처단 사건이 있다. 국내에서 애국 계몽 운동을 했던 김달하는 1916년부터 베이징에 살며 일제의 고급 밀정 노릇을 해왔다. 1922년부터는 김창숙(金昌淑)을 회유하려고 하였다.
1925년 3월 다물단은 의열단(義烈團)과의 합동 작전으로 김달하를 처단하였다. 다물단은 김달하 처단 후 「악분자소탕선언(惡分子掃蕩宣言)」을 국내 신문사에 우송하여 독립전쟁의 장애물이 되는 친일파를 처단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또한, 다물단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단원을 파견하였다.
1925년 5월 서동일(徐東日)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여 경상북도 일대에서 다물단의 선언서를 제시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다 10월경 체포되었다.
다물단의 활동은 만주와 국내에서 1920년대 후반까지 전개되고는 있으나, 1925년을 고비로 사실상 해산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