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23년 중국 베이징에서 신채호, 유자명, 이회영 등이 조직한 아나키스트 운동 단체.
변천 및 현황
"옛 땅을 회복한다."는 뜻의 고구려 말인 다물은 용감(勇敢), 전진(前進), 쾌단(快斷) 등의 의미도 가지고 있고, "입을 다문다."는 뜻도 있다. 즉, 불언실행(不言實行)을 주지로 하여 밀정이라고 의심되는 사람을 처단하는 의열 투쟁을 목적으로 하였다.
다물단의 대표적인 의열 투쟁은 베이징의 거물 친일파 밀정 김달하(金達河) 처단 사건이 있다. 국내에서 애국 계몽 운동을 했던 김달하는 1916년부터 베이징에 살며 일제의 고급 밀정 노릇을 해왔다. 1922년부터는 김창숙(金昌淑)을 회유하려고 하였다.
1925년 3월 다물단은 의열단(義烈團)과의 합동 작전으로 김달하를 처단하였다. 다물단은 김달하 처단 후 「악분자소탕선언(惡分子掃蕩宣言)」을 국내 신문사에 우송하여 독립전쟁의 장애물이 되는 친일파를 처단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또한, 다물단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단원을 파견하였다.
1925년 5월 서동일(徐東日)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여 경상북도 일대에서 다물단의 선언서를 제시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다 10월경 체포되었다.
다물단의 활동은 만주와 국내에서 1920년대 후반까지 전개되고는 있으나, 1925년을 고비로 사실상 해산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단행본
-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한국독립운동사』 5(국사편찬위원회, 1969)
- 『한국독립운동사』 4(국사편찬위원회, 1968)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논문
- 박걸순, 「1920년대 북경의 한인 아나키즘운동과 의열투쟁」(『동양학』 54,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2013)
- 박환, 「1920년대 중반 북경지역 다물단의 성립과 활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 33,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200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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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베이징[北京]대학 캠퍼스 내에 위치했었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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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말없이 실제로 행하여짐. 또는 실제로 행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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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왜의 총독과 천황을 먼저 죽여야 하지만 조선인으로서 왜노의 혼을 가진 자를 먼저 소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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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이명은 서춘파(徐春波). 1923년 1월 중국 베이징에서 남형우, 배천택 등이 조직한 국민당(뒤에 다물단)에 가입하여 재정부장에 임명되었으며, 국내에 파견되어 3회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여 전달하는 등 활동하다가 피체되어 징역 3년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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