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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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애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38~839년이다. 왕위 계승을 두고 분쟁이 치열하던 시기의 왕이다. 이 시기의 왕위계승 분쟁은 김제륭(희강왕)-김명(민애왕)의 제휴세력과 김균정-김우징(신무왕) 부자 사이의 대립이었다. 김제륭-김명 세력이 승리하여 김제륭이 희강왕에 즉위했는데 실질적 주도권을 가진 김명이 이홍과 함께 다시 난을 일으키자 희강왕은 자진하고 김명이 민애왕으로 즉위했다. 청해진에 의탁하고 있던 김우징이 다시 장보고의 대군을 이끌고 진격하여 벌어진 싸움에서 대패하고 병사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민애왕 (閔哀王)
민애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38~839년이다. 왕위 계승을 두고 분쟁이 치열하던 시기의 왕이다. 이 시기의 왕위계승 분쟁은 김제륭(희강왕)-김명(민애왕)의 제휴세력과 김균정-김우징(신무왕) 부자 사이의 대립이었다. 김제륭-김명 세력이 승리하여 김제륭이 희강왕에 즉위했는데 실질적 주도권을 가진 김명이 이홍과 함께 다시 난을 일으키자 희강왕은 자진하고 김명이 민애왕으로 즉위했다. 청해진에 의탁하고 있던 김우징이 다시 장보고의 대군을 이끌고 진격하여 벌어진 싸움에서 대패하고 병사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통일신라의 제29대 왕, 태종 무열왕의 8세손으로, 명원공에 봉해진 종실.
김정여 (金貞茹)
통일신라의 제29대 왕, 태종 무열왕의 8세손으로, 명원공에 봉해진 종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선문구산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산한 승려.
무염 (無染)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선문구산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산한 승려.
문성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재46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839~857년이다. 장보고의 반란을 진압하고, 균정계와 헌정계의 화합을 꾀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중국으로 향하는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강화도에 혈구진을 설치하였다.
문성왕 (文聖王)
문성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재46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839~857년이다. 장보고의 반란을 진압하고, 균정계와 헌정계의 화합을 꾀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중국으로 향하는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강화도에 혈구진을 설치하였다.
신무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39년 중 반 년이 안될 정도로 짧다. 신무왕 재위기는 원성왕 자손들 간에 치열한 왕위계승분쟁이 이어지던 시기이다. 아버지 김균정을 왕에 옹립하려던 싸움에서 패하고 청해진의 장보고에 의탁하고 있던 우징은 장보고의 도움으로 민애왕 토벌에 나섰다. 민애왕은 김균정을 살해하고 세운 희강왕을 다시 반란으로 자진케 하여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민애왕이 전투 중 도망가다가 병사들에 의해 살해당하자 우징이 신무왕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장보고의 압력을 받다가 몇 달 만에 병사했다.
신무왕 (神武王)
신무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39년 중 반 년이 안될 정도로 짧다. 신무왕 재위기는 원성왕 자손들 간에 치열한 왕위계승분쟁이 이어지던 시기이다. 아버지 김균정을 왕에 옹립하려던 싸움에서 패하고 청해진의 장보고에 의탁하고 있던 우징은 장보고의 도움으로 민애왕 토벌에 나섰다. 민애왕은 김균정을 살해하고 세운 희강왕을 다시 반란으로 자진케 하여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민애왕이 전투 중 도망가다가 병사들에 의해 살해당하자 우징이 신무왕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장보고의 압력을 받다가 몇 달 만에 병사했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양의 난 당시의 관리.
의훈 (嶷勛)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양의 난 당시의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