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낙랑계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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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기 묘지명은 낙랑계 가문 출신으로, 북위시대의 인물인 왕기(482∼522)의 묘지(墓誌)이다. 지석은 가로·세로 모두 53㎝의 정방형이다. 가로 21행, 세로 24칸을 만들어 총 471자를 음각하였으며 글씨는 해서체이다. 왕기는 수양산 금문에 장사 지냈는데 그의 묘지는 이때 부장된 것으로 찬자와 글씨를 쓴 사람은 밝혀져 있지 않다. 1927년 중국 허난성 낙양 동산령에서 출토되었으며 1940년 서안 비림으로 옮겨졌다. 낙랑군 유민의 묘지로서 낙랑 왕씨의 가계 의식은 물론, 중국으로의 이주 이후 정치적 활동상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왕기 묘지명 (王基 墓誌銘)
왕기 묘지명은 낙랑계 가문 출신으로, 북위시대의 인물인 왕기(482∼522)의 묘지(墓誌)이다. 지석은 가로·세로 모두 53㎝의 정방형이다. 가로 21행, 세로 24칸을 만들어 총 471자를 음각하였으며 글씨는 해서체이다. 왕기는 수양산 금문에 장사 지냈는데 그의 묘지는 이때 부장된 것으로 찬자와 글씨를 쓴 사람은 밝혀져 있지 않다. 1927년 중국 허난성 낙양 동산령에서 출토되었으며 1940년 서안 비림으로 옮겨졌다. 낙랑군 유민의 묘지로서 낙랑 왕씨의 가계 의식은 물론, 중국으로의 이주 이후 정치적 활동상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원빈지처 한씨 묘지명은 낙랑계 가문 출신으로, 북위시대의 종실인 왕도민의 둘째 딸 한씨부인(482∼513)의 묘지(墓誌)이다. 한씨부인은 32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묘지는 이때 부장된 것이다. 지석은 가로·세로 모두 49cm 크기의 정방형이며 총 270자가 음각되어 있다. 글씨는 해서체이며, 찬자와 글씨를 쓴 사람은 밝혀져 있지 않다. 중국 허난성 뤄양(洛陽)에서 출토되었다. 묘지명의 내용은 인적 사항을 제외하면 언니의 ‘원원평처왕씨묘지명(元願平妻王氏墓誌銘)’과 동일하다. 이 묘지는 낙랑계 왕씨가 북중국으로 이주한 뒤의 활동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빈지처 한씨 묘지명 (元斌之妻 韓氏 墓誌銘)
원빈지처 한씨 묘지명은 낙랑계 가문 출신으로, 북위시대의 종실인 왕도민의 둘째 딸 한씨부인(482∼513)의 묘지(墓誌)이다. 한씨부인은 32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묘지는 이때 부장된 것이다. 지석은 가로·세로 모두 49cm 크기의 정방형이며 총 270자가 음각되어 있다. 글씨는 해서체이며, 찬자와 글씨를 쓴 사람은 밝혀져 있지 않다. 중국 허난성 뤄양(洛陽)에서 출토되었다. 묘지명의 내용은 인적 사항을 제외하면 언니의 ‘원원평처왕씨묘지명(元願平妻王氏墓誌銘)’과 동일하다. 이 묘지는 낙랑계 왕씨가 북중국으로 이주한 뒤의 활동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