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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씻어내는데 쓰는 세정제(洗淨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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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때를 씻어내는데 쓰는 세정제(洗淨劑).
내용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비누는 잿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었다. 유럽에서는 수지(獸脂: 짐승의 기름)와 잿물을 섞어 만들었으며, 중국에서는 석감(石鹼)이라 하여 잿물에 응고제인 여뀌 등의 풀즙[草汁]과 밀가루를 섞어 만든 것이 쓰였다.

석감은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된 듯한데, 비누가 널리 보급된 1930년대에도 비누를 석감이라고 하였다. 잿물 이외에 팥으로 만든 조두(澡豆)가 있었는데, 이것은 고급 세정제로 신라 때부터 한말까지 사용되었다. 조두는 세정 및 미백 효과가 있어서 한말의 왕비도 이를 애용하였다고 전한다.

만드는 방법은 팥을 맷돌에 갈아 껍질을 벗겨낸 뒤, 다시 갈아 체로 쳐서 미숫가루처럼 고운 가루로 만든다. 얼굴을 물로 한번 씻은 뒤 손에 팥가루를 묻혀 얼굴에 문지르면 때가 빠지고 살결도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조두는 팥 이외에 녹두와 콩으로도 만들었다.

특히 정월 첫 돼지날에 조두로 세수하면 얼굴이 희어진다는 속신이 있어 이날 1년분을 만들어 박 속에 저장하여두고 쓰기도 하였다. 조두를 만들 형편이 못되는 집에서는 콩깍지 삶은 물, 창포 우린 물을 사용하였고 고운 쌀겨를 무명주머니에 담아 문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세정제들은 어느 것이나 날비린내를 품고 있어서 사용한 뒤에는 향수[花精油]를 살짝 바르거나 향 분말을 옷에 뿌렸다. 이밖에 오줌도 세정제로 쓰여 기름이나 물감이 묻은 옷을 세탁하는 데 쓰였으며, 얼굴을 희게 하는 묘방으로도 이용되었다.

옷의 때를 빼는 데에는 주로 잿물이 이용되었다. 찰볏짚과 서속(기장과 조)의 짚을 태운 재를 모아두었다가 받침을 깐 시루에 넣고 물을 부으면 불그스름한 잿물이 모이게 되는데, 이 물로 세탁을 하였다. 이밖에 콩깍지잿물, 창포뿌리를 말린 가루, 토란 삶은 물 등도 세정제로 이용되었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옷의 때가 안 지는 것은 토란 삶은 즙에 빨면 희어진다. 창포의 흰 뿌리를 구리칼이나 대칼로 얇게 저며 볕에 말린 뒤 가루를 내어 물그릇 속에 넣고 때 묻은 옷을 담가 그 가루를 뿌리면서 빨면 깨끗해진다. 콩깍지잿물에도 묵은 때가 잘 진다.”라 하여 세정제를 사용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상에서 설명한 세정제는 어느 것이나 제조가 용이한 대신 사용과 보관이 번거로우며, 날비린내가 나고 때가 잘 빠지지 않는 등 결점이 있어 상품화되지 못하고 자가용으로만 쓰였다. 개항 이후 현재 사용하는 비누가 전래되기 시작하여 전통적으로 이용되어오던 조두와 잿물이 사라지게 되었다.

유럽에서 사용된 비누는 올리브기름과 해초를 구워 얻은 알칼리로 만든 것으로 8세기경 이탈리아 사보나 지방에서 만들기 시작하였다. 유럽에 비누가 퍼진 것은 11세기경으로 주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제조되었으며, 현재와 같은 비누는 18세기 초에 완성되었다. 이 비누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네덜란드인 하멜(Hamel, H.)에 의해서였다.

본격적으로 이용된 것은 조선 말 개국 이후부터이다. 이 비누는 때가 잘 빠지고 사용이 간편할 뿐 아니라 향기가 좋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어서 각광을 받았다. 청일전쟁 직후에는 비누 1개의 값이 1원(당시 쌀 한말은 80전)이나 하였는데, 역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이와 같이 비누는 값이 비싸서 부유층 사람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기에 비누냄새를 멋쟁이냄새라고 하였다.

일부에서는 멋쟁이임을 과시하기 위하여 맨 얼굴에 비누를 문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세탁용으로는 일본을 통해 도입된 양잿물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양잿물은 부식성이 커서 섬유가 많이 상하며 위험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비누를 가장 먼저 생산한 곳은 동산유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비누를 대신하여 석유화학계의 합성세제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합성세제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개발한 것이다. 독일이 전쟁에 지면서 식량난 때문에 유지로 만드는 비누를 만들 수 없게 되자 그 대용품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것은 성능이 빈약하여 별로 쓰이지 않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다시 개발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쓰이고 있는 것과 같은 합성세제를 만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6년부터 합성세제가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용하고 버린 합성세제는 자연계의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지 않으므로 공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될 수 있는 연성세제를 개발하게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부터 경성세제의 생산을 금하고 연성세제를 사용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규합총서』
『한국화장문화사』(전완길, 열화당, 1987)
『멋 5000년』(전완길, 교문사, 1980)
『풍류세시기』(이승만, 중앙일보사, 1977)
『낙선재주변』(김명길, 중앙일보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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