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 생활
  • 개념
살갗을 바늘로 찔러 물감이나 먹물로 글씨·그림·무늬를 새기는 풍습. 자문·입묵·자청.
이칭
  • 이칭입묵(入墨), 자문(刺文), 자청(刺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전완길 (태평양박물관,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살갗을 바늘로 찔러 물감이나 먹물로 글씨·그림·무늬를 새기는 풍습. 자문·입묵·자청.

내용

자문(刺文)·입묵(入墨)·자청(刺靑)이라고도 한다. 문신은 그 역사가 오래되어 서기전 12세기경 주공단(周公旦)의 두 아들이 형만(荊蠻)의 풍속을 따라 머리를 깎고 전신에 회색칠을 하는 문신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그 역사가 오래되어서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에서도 “마한의 남자들이 때때로 문신을 하였다(男子時時有文身).”라고 하였고, 변진인들도 “남녀가 왜와 같이 문신을 하였다(男女近倭亦有文身).”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 대하여 이병도(李丙燾)는 문신이 자자(刺字)로 해양민족(왜인)의 고유민속이라는 전제하에서, 마한과 변진사람들이 왜의 풍속을 모방한 듯이 해석하였다. 그러나 마한인들이 장식하기를 즐겼다는 『삼국지』의 기록으로 미루어, 마한·변진인들의 문신은 자자(刺字)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장신구·색깔무늬 등의 장식이 포함된 멋내기 수단이자 주부(呪符)였고, 신분과 계급을 표시하는 방편이었다고 생각된다. 고려 및 조선시대는 도둑의 이마에 ‘도(盜)’라는 글자를 자자하였으며, 연산군 때는 도망한 공·사 노비를 붙잡아 도노(逃奴)·도비(逃婢) 등의 글자를 얼굴에 새겨 넣었다.

문신은 이러한 형벌의 의미뿐 아니라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어 조선 말까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피부에 새겨 넣는 예가 있었다. 또,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의 수단으로 문신을 하기도 하였다.

강원도 산간지방에서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이마에 붉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평안북도에서는 임산부가 난산할 경우 발바닥에 天자를 입묵하였다. 제주도에서는 갓난아기가 첫 나들이를 할 때 이마와 콧등에 반드시 솥밑 검댕을 발랐다.

참고문헌

  • - 『삼국지(三國志)』

  • - 『후한서(後漢書)』

  • - 『수서(隋書)』

  • - 『한국화장문화사(韓國化粧文化史)』(전완길, 열화당, 1987)

  • - 『멋 5000년』(전완길, 교문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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