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색의 안료로 만든다. 언제부터 눈화장에 사용하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신라시대 여인들이 눈썹화장을 하였으며, 고구려벽화 인물상의 눈썹이 가지런한 점으로 보아 삼국시대에는 널리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인상만으로 그 사람의 품성과 운명마저 판단하는 버릇이 있다.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눈썹이므로 눈썹의 형태를 매우 중시하였다. 일반적으로 남자의 눈썹은 숱이 많고 八자형이면 무난하게 여기고, 여자의 눈썹은 가늘고 동그랗게 휘어지면 좋게 여긴 바, 『규합총서』에 열 가지의 눈썹모양이 소개되어 있을 만큼 눈썹화장에 신중하였다. 여자의 눈썹이 진하고 숱이 많은 경우에 쪽집게로 일부를 뽑거나 가다듬었다.
그 다음 화황(花黃)을 발라 부드럽고 엷은 색깔을 내었다. 반대로 흐린 경우에는 굴참나무 혹은 너도밤나무의 목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보다 고급인 것은 관솔에서 얻은 유연(油煙)을 평지씨기름에 갠 것이었다. 이밖에 목화의 자색꽃을 태운 재를 참기름에 개기도 하고 보리깜부기를 솔잎 태운 유연에 개어 만들기도 하였다.
때로는 약간 붉은 기가 도는 검푸른 흙을 눈썹먹 대신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눈썹먹을 속눈썹에 바르기도 하였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길고 진한 속눈썹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속눈썹에 바르는 예는 흔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요즈음에는 눈두덩에 청색·보라색·노란색의 화장품을 발라 음영을 줌으로써 입체감을 살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화황을 눈두덩 혹은 이마에 발라 약간의 입체감을 살리고자 하였을 뿐이다. 화장품을 분대(粉黛 : 백분과 눈썹먹)라고 부를 만큼 눈썹먹이 백분에 버금가는 필수화장품이었는데, 눈썹먹은 아황(鴉黃)이라는 붓으로 그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