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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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는 중국 동북방에 분포한 민족을 중국인[漢族]이 부르던 종족 명칭이다. 중국역사 초기에 등장하는 ‘동이’라는 개념은 중국의 한문화(漢文化)와 상대적인 문화개념으로 호칭된 것이다. 진나라의 중국 통일 이전에는 방위 개념에 따라 산둥반도 등 동쪽의 변방까지를 포함하여 동이라 하였으나 중국 통일 후에는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특정 종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성격이 점차 바뀌었다. 한민족의 근간이 된 예맥족이 포함된 동이족은 중국의 한족과 대립하면서 중국 및 북방 종족들과도 다른 독특한 문화전통을 유지·발전시킨 종족이라 할 수 있다.
동이 (東夷)
동이는 중국 동북방에 분포한 민족을 중국인[漢族]이 부르던 종족 명칭이다. 중국역사 초기에 등장하는 ‘동이’라는 개념은 중국의 한문화(漢文化)와 상대적인 문화개념으로 호칭된 것이다. 진나라의 중국 통일 이전에는 방위 개념에 따라 산둥반도 등 동쪽의 변방까지를 포함하여 동이라 하였으나 중국 통일 후에는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특정 종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성격이 점차 바뀌었다. 한민족의 근간이 된 예맥족이 포함된 동이족은 중국의 한족과 대립하면서 중국 및 북방 종족들과도 다른 독특한 문화전통을 유지·발전시킨 종족이라 할 수 있다.
이문홍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남만청년총동맹의 교육부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함경도를 중심으로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재건운동을 전개하였다.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활동가들과 공동 투쟁을 전개하였다. 8·15광복 후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참여하였고, 사회노동당과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였다.
이문홍 (李文弘)
이문홍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남만청년총동맹의 교육부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함경도를 중심으로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재건운동을 전개하였다.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활동가들과 공동 투쟁을 전개하였다. 8·15광복 후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참여하였고, 사회노동당과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제1중대장, 상해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 참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채찬 (蔡燦)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제1중대장, 상해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 참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홍광은 일제강점기 때, 반석중심현위원회 위원, 동북인민혁명군 제1사 정치위원 등을 역임하며 항일농민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에 태어나 1935년에 사망하였다. 1925년 중국 길림성으로 이주하여 1927년 재만농민동맹에 가입하였다. 이후 반일회와 농민회 등 단체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주도하였다. 1931년 속칭 ‘개잡이대’라고 알려진 적위대를 창건해 항일무장투쟁 및 반봉건투쟁에 앞장섰다. 1932년 남만유격대의 침모장을 맡아 항일유격전을 전개하였다. 한인으로 조직된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를 이끌며 동흥 점령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홍광 (李紅光)
이홍광은 일제강점기 때, 반석중심현위원회 위원, 동북인민혁명군 제1사 정치위원 등을 역임하며 항일농민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에 태어나 1935년에 사망하였다. 1925년 중국 길림성으로 이주하여 1927년 재만농민동맹에 가입하였다. 이후 반일회와 농민회 등 단체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주도하였다. 1931년 속칭 ‘개잡이대’라고 알려진 적위대를 창건해 항일무장투쟁 및 반봉건투쟁에 앞장섰다. 1932년 남만유격대의 침모장을 맡아 항일유격전을 전개하였다. 한인으로 조직된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를 이끌며 동흥 점령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