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남명학파"
검색결과 총 6건
박여량은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서 활약한 의병장이자 문신이다. 17세기 전반 남명학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였을 때 정인홍과 함께 경상우도 지역과 조정에서 그 위상을 크게 떨치는 데 기여한 주요 인물이다. 스승 정인홍과 정치적 입장을 함께하였다.
박여량 (朴汝樑)
박여량은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서 활약한 의병장이자 문신이다. 17세기 전반 남명학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였을 때 정인홍과 함께 경상우도 지역과 조정에서 그 위상을 크게 떨치는 데 기여한 주요 인물이다. 스승 정인홍과 정치적 입장을 함께하였다.
『무민당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본집 7권 4책, 별집 2권 1책 등 모두 9권 5책의 목판본으로, 본집의 표제와 권수제는 ‘무민당선생문집(無悶堂先生文集)’, 판심제는 ‘무민당집(無悶堂集)’이다.
무민당문집 (無悶堂文集)
『무민당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본집 7권 4책, 별집 2권 1책 등 모두 9권 5책의 목판본으로, 본집의 표제와 권수제는 ‘무민당선생문집(無悶堂先生文集)’, 판심제는 ‘무민당집(無悶堂集)’이다.
북인은 조선시대 광해군 대 집권 세력이었던 붕당의 한 정파이다. 동인은 분당 이후 임진왜란 종전까지 20여 년 동안 정국을 주도했는데, 주류는 퇴계학파, 비주류는 남명 · 화담학파였다. 동인 비주류 세력이었던 북인은 1589년 기축옥사 당시 서인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적극적인 의병 참여와 주전론(主戰論)의 제기를 통해 세력을 키웠다. 광해군을 줄곧 지지했던 이들은 광해군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집권 세력이 되었다.
북인 (北人)
북인은 조선시대 광해군 대 집권 세력이었던 붕당의 한 정파이다. 동인은 분당 이후 임진왜란 종전까지 20여 년 동안 정국을 주도했는데, 주류는 퇴계학파, 비주류는 남명 · 화담학파였다. 동인 비주류 세력이었던 북인은 1589년 기축옥사 당시 서인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적극적인 의병 참여와 주전론(主戰論)의 제기를 통해 세력을 키웠다. 광해군을 줄곧 지지했던 이들은 광해군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집권 세력이 되었다.
영남학파는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상의 유파로서, 영학파, 퇴계학파, 남명학파, 여헌학파를 총칭한다. 영남학파의 학맥은 정몽주에서 비롯해 길재,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으로 계승되었다. 조선 초기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영학파는 훈구파와의 반목으로 정치적 희생물이 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황은 영남좌도에서 퇴계학파의 영수로서, 조식은 영남우도에서 남명학파의 영수로서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다. 여헌학파인 장현광은 퇴계학파인 정구, 정경세와 교유했을 뿐 아니라 퇴계학을 묵수하였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여헌학파도 퇴계학파에 속한다.
영남학파 (嶺南學派)
영남학파는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상의 유파로서, 영학파, 퇴계학파, 남명학파, 여헌학파를 총칭한다. 영남학파의 학맥은 정몽주에서 비롯해 길재,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으로 계승되었다. 조선 초기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영학파는 훈구파와의 반목으로 정치적 희생물이 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황은 영남좌도에서 퇴계학파의 영수로서, 조식은 영남우도에서 남명학파의 영수로서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다. 여헌학파인 장현광은 퇴계학파인 정구, 정경세와 교유했을 뿐 아니라 퇴계학을 묵수하였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여헌학파도 퇴계학파에 속한다.
조선시대 학자 정인홍이 이황을 비판한 상소와 자신을 비판한 상소를 필사한 등록. 상소문.
퇴계학설반대상소문 (退溪學說返對上疏文)
조선시대 학자 정인홍이 이황을 비판한 상소와 자신을 비판한 상소를 필사한 등록. 상소문.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지공파 하협종택에 전래된 문서이다. 2006년 11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분재기 22점, 호적관련문서 42점, 소지류 26점, 시권 7점 등 총 126점이다. 분재기는 16세기 후반에서 18세기 말까지의 기록인데, 재산의 분류가 부변(父邊)과 모변(母邊)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상, 자식은 물론 친인척에게 분재한 기록 등 여러 가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호적류는 지역의 유력한 사대부가문의 가족과 재산 및 인구의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진주 단목리 단지 하협 종택 소장 고문서 (晋州 丹牧里 丹池 河悏 宗宅 所藏 古文書)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단지공파 하협종택에 전래된 문서이다. 2006년 11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분재기 22점, 호적관련문서 42점, 소지류 26점, 시권 7점 등 총 126점이다. 분재기는 16세기 후반에서 18세기 말까지의 기록인데, 재산의 분류가 부변(父邊)과 모변(母邊)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상, 자식은 물론 친인척에게 분재한 기록 등 여러 가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호적류는 지역의 유력한 사대부가문의 가족과 재산 및 인구의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