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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회는 제헌국회에서 활동한 군소 정파이다. 민족청년단을 기초로 1948년 결성된 청구회를 기반으로 한다. 민족청년단 해체, 일민구락부 탄생을 계기로 1949년 5월 7일 신정회가 탄생하였다. 대중 정치를 표방하며 월간지 『신정』을 발간하였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향상', '진정한 민족적 민주사회 건설'을 당면 과제로 내세웠다. 중간파의 남북 협상에 의한 평화통일론, 이승만 한민당의 북진통일론을 모두 비판하였다. 1950년 1월 신정회원 전원이 대한국민당으로 통합되었다. 국회 프락치 사건을 계기로 보수화하였으나 점진적이고 온건한 통일론을 주장하였다.
신정회 (新政會)
신정회는 제헌국회에서 활동한 군소 정파이다. 민족청년단을 기초로 1948년 결성된 청구회를 기반으로 한다. 민족청년단 해체, 일민구락부 탄생을 계기로 1949년 5월 7일 신정회가 탄생하였다. 대중 정치를 표방하며 월간지 『신정』을 발간하였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향상', '진정한 민족적 민주사회 건설'을 당면 과제로 내세웠다. 중간파의 남북 협상에 의한 평화통일론, 이승만 한민당의 북진통일론을 모두 비판하였다. 1950년 1월 신정회원 전원이 대한국민당으로 통합되었다. 국회 프락치 사건을 계기로 보수화하였으나 점진적이고 온건한 통일론을 주장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상해군정서 전북군무총장을 역임하고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 정치인이다. 1888년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마령면 평지리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1921년 조선독립군 청년단 의용군을 조직하다가 검거되어 1년간 복역했다. 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진안군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49년 7월 대한노농당 소속으로 대한국민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오기열 (吳基烈)
일제강점기 때 상해군정서 전북군무총장을 역임하고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 정치인이다. 1888년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마령면 평지리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1921년 조선독립군 청년단 의용군을 조직하다가 검거되어 1년간 복역했다. 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진안군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49년 7월 대한노농당 소속으로 대한국민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