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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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년(고려 태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후백제견훤(甄萱)과 태조 왕건(王建)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공산전투 (公山戰鬪)
927년(고려 태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후백제견훤(甄萱)과 태조 왕건(王建)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장무이묘(張撫夷墓)는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대방군 태수 장무이의 벽돌방무덤이다. 봉산군에서 문자벽돌이 채집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도총이라고 불리던 무덤에 대하여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1911년 최초로 조사를 실시하었다. 부장 유물은 이미 도굴되어 거의 남지 않았는데, 문자벽돌이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이 장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피장자는 낙랑 · 대방군의 멸망과 함께 망명하여 허호를 받은 중국계 인물로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장무이묘는 고구려에 의해 4세기 중엽경에 축조된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장무이 묘 (張撫夷 墓)
장무이묘(張撫夷墓)는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대방군 태수 장무이의 벽돌방무덤이다. 봉산군에서 문자벽돌이 채집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도총이라고 불리던 무덤에 대하여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1911년 최초로 조사를 실시하었다. 부장 유물은 이미 도굴되어 거의 남지 않았는데, 문자벽돌이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이 장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피장자는 낙랑 · 대방군의 멸망과 함께 망명하여 허호를 받은 중국계 인물로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장무이묘는 고구려에 의해 4세기 중엽경에 축조된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1429년(세종 11) 궁중에서 연향(宴享 : 국빈을 대접하는 잔치)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악장.
축성수 (祝聖壽)
1429년(세종 11) 궁중에서 연향(宴享 : 국빈을 대접하는 잔치)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악장.
영화(永和)는 중국 동진시대 중국왕조의 연호이다. 동진(東晉)시대의 '영화' 연호(年號)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몇몇 무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체적으로 안악3호분, 그리고 평안남도 평양시 평양역 구내에서 발견된 동리(佟利)라는 인물의 무덤에 있던 문자가 새겨진 벽돌에서도 발견된다.
영화 (永和)
영화(永和)는 중국 동진시대 중국왕조의 연호이다. 동진(東晉)시대의 '영화' 연호(年號)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몇몇 무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체적으로 안악3호분, 그리고 평안남도 평양시 평양역 구내에서 발견된 동리(佟利)라는 인물의 무덤에 있던 문자가 새겨진 벽돌에서도 발견된다.
고려시대 춘추사관의 관직.
수찬관 (修撰官)
고려시대 춘추사관의 관직.
고려후기 문신 임익과 김변이 왕명으로 원나라 세조의 행적을 기록하여 1295년에 편찬한 사적기.
선제사적 (先帝史蹟)
고려후기 문신 임익과 김변이 왕명으로 원나라 세조의 행적을 기록하여 1295년에 편찬한 사적기.
김훤은 고려 후기 정당문학·보문각 대학사·동수국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원종 대부터 충렬왕 대까지 주로 문한직에서 활약하였고, 문한관으로서 왕명 문서를 많이 기초하였으며,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다. 충렬왕 말엽 하정사가 되어 원나라에 갔으며, 그곳에 있던 훗날의 충선왕인 세자를 수종하는 등 대원 외교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김훤 (金晅)
김훤은 고려 후기 정당문학·보문각 대학사·동수국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원종 대부터 충렬왕 대까지 주로 문한직에서 활약하였고, 문한관으로서 왕명 문서를 많이 기초하였으며,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다. 충렬왕 말엽 하정사가 되어 원나라에 갔으며, 그곳에 있던 훗날의 충선왕인 세자를 수종하는 등 대원 외교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