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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은 고려후기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396년(태조 5)에 사망했다. 1352년(공민 1) 전제개혁, 국방계획,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고려의 향시와 원나라의 과거에 모두 합격하고 관료의 길을 걸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여 조선 초 성리학 부흥의 길을 열었다.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옹립하고 이성계 세력과 맞섰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의 출사 종용을 끝내 고사했다.
이색 (李穡)
이색은 고려후기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396년(태조 5)에 사망했다. 1352년(공민 1) 전제개혁, 국방계획, 교육진흥, 불교억제 등 시정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올렸다. 고려의 향시와 원나라의 과거에 모두 합격하고 관료의 길을 걸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여 조선 초 성리학 부흥의 길을 열었다.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옹립하고 이성계 세력과 맞섰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의 출사 종용을 끝내 고사했다.
산대잡극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산대 앞에서 연행된 연희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헌에 백희·가무백희(歌舞百戱)·잡희(雜戱)·백희잡기(百戲雜技) 등으로 기록된 연희들을 나례(儺禮)에서 연행하면 나례(儺禮)·나희(儺戱)·나(儺) 등으로 불렀으며, 산대 앞에서 연행하면 산대잡극(山臺雜劇)·산대희(山臺戱)·산대나례(山臺儺禮) 등으로 불렀다.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33권에 실린 시 「동대문부터 대궐 문전까지의 산대잡극은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다[自東大門至闕門前山臺雜劇前所未見也]」에 사용되었다.
산대잡극 (山臺雜劇)
산대잡극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산대 앞에서 연행된 연희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헌에 백희·가무백희(歌舞百戱)·잡희(雜戱)·백희잡기(百戲雜技) 등으로 기록된 연희들을 나례(儺禮)에서 연행하면 나례(儺禮)·나희(儺戱)·나(儺) 등으로 불렀으며, 산대 앞에서 연행하면 산대잡극(山臺雜劇)·산대희(山臺戱)·산대나례(山臺儺禮) 등으로 불렀다.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33권에 실린 시 「동대문부터 대궐 문전까지의 산대잡극은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다[自東大門至闕門前山臺雜劇前所未見也]」에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