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구는 부산광역시 남부의 단일 도서로 구성된 구이다. 영도대교·부산대교 등을 통해 본토와 연결된다. 한국 최초 근대식 조선소가 들어선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발상지로 한때 대형 조선소와 수리 조선소가 밀집했으나 1970년대 이후 쇠퇴하였다. 최근 도시재생사업과 중소형 조선업 고도화 정책으로 활력을 모색하고 있다. 주요 관광지는 태종대, 절영해안산책로, 흰여울문화마을, 봉래산 등이며, 이를 영도8경으로 지정해 홍보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4.2㎢이고, 인구는 10만 3737명이다. 영도구청은 청학동에 있다.
영도구는 영도 및 부속도서로 이루어진 구로, 섬의 중앙에는 주봉인 봉래산이 있다. 영도대교와 부산대교 등을 통해 본토와 연결된다. 한국 최초 근대식 조선소가 들어선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발상지로, 한때 대형 조선소와 수리 조선소가 밀집했으나 1970년대 이후 조선업이 침체하며 쇠퇴하였다. 최근 도시재생사업과 중소형 조선업 고도화 정책으로 활력을 모색하고 있다. 주요 관광지는 태종대, 조도[아치섬], 절영해안산책로, 흰여울문화마을, 깡깡이예술마을, 봉래산 등이며, 이를 영도8경으로 지정해 홍보하고 있다.
면적은 14.2㎢이다. 1995년 21만 260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4년 12월 31일 기준 10만 3737명에 이르렀다. 행정구역은 11개 행정동과 21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도구청은 청학동에 있다.
영도구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 영도]로 구성되어 있다. 섬의 중앙에 주봉인 봉래산(蓬來山: 396.2m)이 있으며, 동삼동 일대에 구릉성 산지가 있다. 남구의 적기반도와는 북항을, 서구의 암남반도와는 남항을 이루고 있다. 북동부의 매립 지역을 제외하고 해안 지역은 대부분 급경사의 암석해안을 이룬다. 주요 도서로 조도(朝島)와 생도(生島)가 있으며, 조도는 일명 아치섬이라고도 불린다.
여름에는 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고온 다습하며 겨울에는 대륙성고기압의 영향으로 한랭 건조한 기후가 나타난다. 해안과 접하여 여름은 내륙지역보다 시원하고, 겨울은 기온이 높아 연교차가 적은 편이다. 1년 내내 강한 바람이 분다. 2023년 연평균기온은 15.3℃이고, 연강수량은 1,657.4㎜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부산 동삼동 패총(釜山 東三洞 貝塚)에서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어, 이 지역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보여 준다. 신라시대에는 거칠산군의 속령이었으며 절영도(絶影島)로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동삼동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마장이 설치되어 ‘목도(牧島)’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주1으로 한때 무인도가 되었으나, 1763년(영조 39) 조엄(趙曮: 1719~1777)이 고구마 종묘를 들여와 처음 재배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인 1881년(고종 18) 절영도진이 설치되었으며, 1896년(고종 33) 13부제 시행에 따라 동래군의 관할이 되었다가 1914년 부산부로 편입되었다. 이어 1934년 영도대교가 준공되면서 본토와 연결되어 급격히 발전하였고, 1951년 부산시 영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57년 구제가 실시되면서 영도구로 승격하였다.
주요 유적으로는 영도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복천사(福泉寺)와 한국 근대 조선(造船) 발상 유적지가 있다.
복천사는 고려 후기에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복천사 지장시왕도(福泉寺 地藏十王圖), 복천사 아미타극락회상도(福泉寺 阿彌陀極樂會上圖), 복천사조상경(福泉寺造像經), 복천사 선원제전집도서(福泉寺 禪源諸詮集都序)가 있다. 또한 부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복천사석조석가여래및보살좌상(福泉寺 石造釋迦如來 및 菩薩坐像), 복천사현왕도및복장유물일괄(福泉寺 現王圖 및 服藏遺物 一括), 복천사독성도및복장유물일괄(福泉寺 獨聖圖 및 服藏遺物 一括), 복천사석가영산회상도(福泉寺 釋迦靈山會上圖) 등이 있다.
영도구 남항동에 있는 한국 근대 조선 발상 유적지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가 설립된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오늘날에는 깡깡이예술마을이 조성되어 근대 수리 조선업의 발달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도 국가유산으로 부산 영도 태종대(釜山 影島 太宗臺)[명승], 영도대교(影島大橋)[부산광역시 기념물], 부산 동삼동 패총[사적], 해련사 장엄의식구(海蓮寺 莊嚴儀式具)[부산광역시 민속문화유산], 해련사 동래부 인상(海蓮寺 東萊府 印床)[부산광역시 민속문화유산]이 있다.
2025년 3월 1일 기준 영도구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4개, 중학교 8개, 고등학교 7개, 대학교 2개가 있다. 대학교로는 동삼동에 고신대학교와 국립한국해양대학교가 있다.
영도구의 주요 문화시설로는 영도문화예술회관, 국립해양박물관,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 깡깡이선박체험관, 영도선박박물관 등이 있다. 이 중 국립해양박물관은 ‘나의 바다, 우리의 미래’라는 콘셉트로 해양 문화와 역사, 항해 선박, 해양생물 등을 이해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은 1763년(영조 39) 조선 통신사 정사(正使)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조엄이 귀국길에 쓰시마[對馬]에서 고구마를 가져와 영도에 심은 사실을 기념하여 건립한 시설이다. 이 기념관은 고구마 시배지로서의 영도를 알리고, 주변 지역과 연계해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영도구의 지역축제에는 글로벌 영도커피 페스티벌, 영도다리축제, 구룡마을축제, 수국꽃문화축제, 흰여울문화마을 골목예술제가 있다.
전통 의례로는 매년 음력 3월 초이튿날 열리는 풍어제가 있다. 영도 풍어제는 동삼동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례로, 용왕제라고도 부른다. 어민들의 단순한 의식에서 그 기능이 점차 확대되어 한 해의 풍어와 선원들의 무사고를 기원하는 지역공동체의 장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특히 무격들의 예술적 기능이 가미되어 인근 마을 주민들까지 참여하는 개방적인 형태의 민속 축제로 자리 잡았다.
지역의 대표적인 설화로는 「영도 아씨당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시대 제주도에서 운송해 온 군마들은 영도의 양육장에 두었다가 나라의 필요에 따라 공출되었다. 그런데 신돈(辛旽: 13231371)의 모함으로 절영도(絶影島)에 유배된 최영(崔瑩: 13161388) 장군의 첩이었던 선녀로 인해 말이 병들어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말을 관리하던 부산진첨사가 이 사실을 조정에 아뢰자, 조정은 동래부사에게 명하여 아씨당(阿氏堂)을 짓게 하고 봄 · 가을 두 차례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그 뒤로는 더 이상 말이 병들어 죽지 않았다고 한다.
영도구는 일제강점기에 한국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가 건립된 이후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발상지로 성장하였다. 해안가에는 대형 조선소와 수리 조선소를 비롯한 각종 공장이 들어섰고, 이를 배경으로 배후지에는 상업 시설과 주거지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해안가의 공장과 조선소가 잇달아 문을 닫았고, 빈집이 늘어나며 지역경제도 침체되었다. 대체 산업이 육성되지 못하면서 인구 유출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해 창고형 공장과 빈집을 개조한 카페들이 들어서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2024년 기준 부산광역시는 ‘시군구 연고 산업 육성사업’을 통해 영도구의 영세한 중소형 조선업을 고도화하여 도시 경쟁력 회복을 도모하고 있다.
영도구는 부산광역시의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철도가 지나가지 않는다. 섬이라는 특성상 육지와 연결되기 위해 영도대교[1934년 개통], 부산대교, 남항대교, 부산항대교 등 여러 연륙교가 건설되었다. 구 전체에 산지가 많아 도로의 기복도 심한 편이다. 영도대교 개통 이전에는 영도 선착장을 이용해 내륙과 오갔으나, 연륙교 건설 이후 육지로의 이동이 편리해지면서 선착장은 현재 운행을 중단한 상태이다.
영도구는 섬이라는 특성 덕분에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관광지는 크게 해안 · 섬 · 항만, 다리 · 거리 · 마을, 전시 · 문화, 산과 사찰로 나눌 수 있다.
해안 · 섬 · 항만 관련 관광지로는 부산 영도 태종대, 조도[아치섬], 남항등대, 절영해안산책로가 있다. 태종대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602~661)이 전국 순행 중 울창한 소나무 숲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절경에 심취해 활을 쏘며 즐겼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도는 영도 남단 1.8㎞ 지점에 위치하며 ‘아치섬’이라고도 불렸는데, 매립으로 넓혀진 지금은 국립한국해양대학교 아치캠퍼스가 들어서 있다. 절영해안산책로는 영도 서쪽 봉래산 기슭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3㎞ 길이의 산책로로, 본래 가파른 지형과 군사보호구역 지정으로 접근이 어려웠으나 2001년 개방되었다.
다리 · 거리 · 마을 관련 관광지로는 흰여울문화마을, 영도대교, 깡깡이예술마을, 해돋이마을이 있다. 흰여울문화마을은 봉래산 기슭 물줄기의 모습이 흰 눈이 내리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며,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깡깡이예술마을은 원래 수리 조선소 마을이었으며, 근대 조선업 관련 산업 유산과 해양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해돋이마을은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2010년대 이후 행복마을만들기 · 새뜰마을사업을 통해 경관이 개선되었다.
산과 사찰 관련 관광지로는 복천사(福泉寺)와 복천사 마애신상, 봉래산이 있다.
영도구에서는 태종대와 영도대교, 절영해안산책로, 봉래산, 조도[아치섬], 75광장, 동삼동 패총전시관, 감지해변산책로를 ‘영도8경’으로 선정하여 소개하고 있다.
영도구의 북서쪽에 있는 동이다. 영도대교와 부산대교를 통해 중구와 연결되며 동쪽은 봉래동, 남쪽은 영선동과 접한다. 영도구의 관문 역할을 했으나 부산대교가 개통된 이후에는 그 역할을 잃게 되었다. 바닷가 주변에 영세한 조선소가 밀집해 있다.
영도구의 중부 동쪽에 있는 동이다. 서쪽은 신선동, 북쪽은 청학동과 접하며, 나머지 지역은 해안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서 패총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영도에서 가장 먼저 취락이 형성된 지역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후 영도가 한동안 빈 섬으로 남아 있을 때에도 이 지역은 어장으로 활용되어 어민들의 출입이 빈번했으며, 진이 설치되기 전에 가장 먼저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관광지로 태종대와 국립해양박물관이 있다.
영도구의 중앙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청학동, 남쪽은 봉래산, 서쪽은 영선동과 신성동, 북쪽은 해안과 접한다. ‘봉래’라는 지명은 섬 중앙에 위치한 봉래산에서 유래하였다. 바닷가 주변에는 남항동과 마찬가지로 영세한 조선소가 밀집해 있다.
영도구의 북서부 내륙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영선동, 남쪽은 동삼동, 서쪽은 해안가이고, 북쪽은 영선동 · 봉래동과 접한다. ‘신선’이라는 지명은 1885년(고종 22) 첨사(僉使) 임익준(任翊準)이 영도의 행정 지명을 지을 때, 이곳 당집의 주인이 여신선(女神仙)이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즉 ‘새로운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봉래산 서쪽 산록에는 계류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계곡에는 영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진 복천사(福泉寺)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북서쪽 해안을 매립하고 산수정(山手町) 1정목, 산수정 2정목, 산수정 3정목으로 구획하였다.
영도구의 북서부에 있는 동이다. 동쪽은 신선동과 봉래동, 남쪽과 서쪽은 해안이며, 북쪽은 남항동과 접한다. ‘영선’이라는 이름은 1885년 첨사 임익준(任翊準)이 영도의 행정 지명을 정할 때 붙여진 것이다.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동해에 있다는 전설 속 섬 ‘영주(瀛州)’와, 신선이 산다고 전해지는 봉래산 기슭의 지리적 특성을 결합해 지었다고 한다. 영선1동은 행정동 가운데 가장 번화한 곳으로 상업 시설이 밀집해 있으며, 영선2동에는 부산광역시의 주요 관광지인 흰여울문화마을이 자리한다
영도구의 북부에 있는 동이다. 선사시대 조개더미[패총]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일찍부터 취락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학’이라는 이름은 숲이 울창했던 지형적 특성과 풍수지리적 해석에서 비롯되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해운대에서 영도를 바라볼 때 학이 남쪽으로 날아가는 형국을 이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고구마를 처음 재배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청학동에는 선박 부품 제조 공장과 석유 관련 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청학2동에는 영도구청이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