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군 ()

부산광역시 기장군 법정구역도
부산광역시 기장군 법정구역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부산광역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군.
정의
부산광역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동해에 면해 있으며, 북서쪽으로 대운산맥을 경계로 경상남도 양산시, 남서쪽으로 부산광역시 금정구·해운대구, 북동쪽은 울산광역시 울주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9°06′∼129°18′, 북위 35°10′∼35°23′에 위치한다. 면적은 218.32㎢이고, 인구는 15만 309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읍, 2개 면, 166개 행정리(66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신천리에 있다.

자연환경

태백산맥의 지맥인 대운산맥이 북동∼남서방향으로 뻗어내려 형성된 산지가 주를 이룬다. 대운산(大雲山, 742m)은 군의 북쪽에 위치하며, 양산시와 울산광역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용천산(湧川山, 545m)·석은덤(543m)·백운산(白雲山, 520m)·망월산(望月山, 522m)·철마산(鐵馬山, 604m)·거문산(543m)·달음산月陰山, 588m·함박산(457m)·아홉산(360m)·양달산(陽達山, 282m)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이들 산지 사이에는 하천의 개석작용에 의해 소규모의 침식분지가 발달되었다. 또한, 기장읍 대변리에서 북쪽의 울산만에 이르는 해안에는 대운산맥과 병행해 해안산맥의 지맥이 동쪽으로 연장되어 고도 90∼100m의 대지(臺地)형의 지형을 이룬다. 아울러 사빈 및 암석해안이 발달되어 있다.

하천은 효암천(孝巖川)·장안천(長安川)·좌광천(佐光川)·일광천(日光川)·죽성천(竹城川)·송정천(松亭川) 등이 동해로 흘러든다. 그리고 이들 하천 연안에는 소규모의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한편, 서쪽 내륙지역에서 흐르고 있는 철마천(鐵馬川)·구칠천(九七川)·이곡천(耳谷川)·송정천(送亭川)·임기천(林基川) 등은 수영강(水營江)으로 흘러든다. 해안에는 기장읍 대변리, 일광면 이천리, 장안읍 월내리 등에 소만(小灣)이 형성되어 있다.

바다와 접하고 있어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연평균기온은 15℃ 내외로 비교적 온난한 편으로, 1월 평균기온이 3∼4℃, 8월 평균기온이 26∼27℃이다. 연강우량은 1200∼1300㎜로 내륙지방에 비해 많은 편이다. 연강우량의 50∼60%가 5∼8월에 집중되고, 특히 7월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린다.

겨울철에 적설은 거의 없다. 습도는 여름에는 80% 이상으로 다습하고, 겨울에는 40% 이하로 매우 저습한 편이다. 바람은 여름에 남풍, 겨울에는 주로 북서계절풍이 분다.

역사

초기 동래(東萊)와 더불어 변한(弁韓)에 속했으며, 변한 12국 중에서는 변한독로국(弁韓瀆盧國)에 속하였다. 초기 삼국시대에는 가야연맹체(加耶聯盟體)의 영향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독로국으로 호칭한 거칠산국(居漆山國)의 일부였다.

79년(탈해왕 23)에 신라가 거칠산국을 정복해 거칠산군을 설치하였다. 그뒤 505년(지증왕 6) 갑화양곡현(甲火良谷縣)을 그 속현(屬縣)으로 했는데, 이 갑화양곡현이 지금의 기장이다. 757년(경덕왕 16)에 갑화양곡현이 기장현으로 개명되고, 동래군(東萊郡)으로 개명된 거칠산군의 속현이 되었다. 이 시대의 유적으로는 연대가 5∼6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청광리고분이 있다.

995년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기장은 영동도(嶺東道) 경주목 양주군 소관의 기장현이었다. 그후 1012년(현종 3) 5도양계제(五道兩界制)가 실시되어 기장은 경상도 경주목 기장현이 되었다. 이때 동래현의 반송동이 기장현으로 이관되었다. 양주(梁州: 지금의 양산시)는 고려가 원(元)에게 복속된 후 폐해져 밀성군(密城郡: 지금의 밀양시)에 병합되었다. 그러던 것이 1304년(충렬왕 30)에 양주군으로 복구되어 동평현(東平縣: 지금의 부산)과 기장현을 속현으로 하였다. 따라서 기장현은 동래군의 영현(領縣)으로 있다가 1304년에 동평현과 더불어 속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상도는 1396년(태조 5)에 전국을 8도로 나누었을 때도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기장현 역시 여전히 양주의 속현이었으며,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혁 때에도 여전히 기장현으로 현감(縣監)을 두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세종 때의 호구수는 174호 397명이었다. 그뒤 1519년(중종 14)에 지방제도를 개편하면서 낙동강을 기준으로 경상도를 좌·우도로 나누었을 때 기장현은 경상좌도(慶尙左道)에 속하였다. 1599년(선조 32) 동래에 합속되었다가 1617년(광해군 9)에 다시 기장현으로 되었다. 별호(別號)를 차성(車城)이라 했고, 하미면(下味面)을 울산에 이관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이관과 병합을 되풀이하다가 1861년(철종 12)에 거의 되돌려 받았다. 1759년 기장현의 호구수는 2,687호 1만 630명이었다.

1895년 을미개혁(乙未改革)에 따라 지방행정구역을 23부, 336군으로 정비하고 8도제를 폐지하였다. 따라서 기장현은 동래·양산·울산과 나란히 동래부(東萊府)의 기장군이 되었다.

그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기장군 일대를 중심지로 부산부의 1개 면을 합쳐서 동래군이라고 개칭하였다. 그리고 기장면·장안면·일광면·정관면·철마면·서생면의 6개 면을 관할하였다. 1936년에는 서면(西面) 및 사하면 암남리가 부산부에 편입되고, 다시 1942년에 동래읍(東萊邑)·남면(南面)·사하면(沙下面)과 북면(北面)의 장전리·반곡리가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63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울주군의 서생면과 온양면(溫陽面)의 일부를 기장에 편입하였다. 그리고 기장의 구포면·사상면·북면과 기장면의 송정리를 부산직할시에 이관했으며, 동래군은 1973년 7월 1일에 양산군에 통합되었다. 1980년 12월 1일에 기장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3년 서생면이 울산군으로 이속되었다. 또한, 1985년 10월 1일에는 장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11월 1일에 양산군 동부출장소(東部出張所)를 설치해 기장읍·장안읍·정관면·철마면·일광면을 관할해 오다가,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 기장군이 되었다. 2015년 9월에는 정관면이 정관읍으로 승격되었다.

유물·유적

불교문화재로 장안읍 장안리의 장안사 대웅전(부산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이 있다. 이는 673년(문무왕 13)에 원효대사가 창건해 쌍계사라 했다가 애장왕 때 장안사로 개칭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1년(인조 9)에 중건한 것이다. 1941년 각현스님이 중수하였고, 1987년 종각을 새로이 세우고 요사를 중창하고 단장하였다. 본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팔각지붕 정면 3간, 측면 2간의 다포집이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기장읍 죽성리에서 석부(石斧)가 발견되었고, 일광면 칠암리에서는 지석묘에서 석검 4개가 수습되었다. 삼한시대의 유적인 고읍성은 기원 전후에 축조된 토성으로, 부산광역시 수영동의 배산에 있는 거칠산국의 성지와 비슷한 형태이다.

삼국시대의 기장읍 청강리고분은 일제강점기 때 도굴되었다. 이는 장방형의 수혈식석곽묘가 주종을 이루며 정상부 쪽으로는 토광묘가 간혹 발견된다. 철마면의 고촌리고분군에는 약 10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며, 토기조각이 산재해 있다. 또한 장안읍 좌천리고분군에도 100여 기가 분포해 있다. 기장읍 만화리의 차건신(車建申)의 묘에는, 신라 애장왕 때의 상대등이던 그가 죽자 왕의 예로 장례하고 기장을 차성으로 승격시켰다는 역사적 기록이 나온다.

기장읍 서부리·동부리·대라리 일원의 기장읍성(부산광역시 기념물, 1996년 지정)은 현재 기장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일부 남아 있다. 두모포영지는 1510년(중종 5) 왜구를 막기 위해 토성으로 쌓았으나 석성으로 개축한 것인데, 이후 임진왜란 때 함락되어 성곽은 인접한 기장왜성 축성으로 파괴되었다. 둘레 400m, 높이 약 3m로 현재는 당시 성곽의 기단부 및 토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기장읍의 죽성리성(竹城里城)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593년(선조 26) 구로다(黑田長政)가 죽성리 뒤편 해안의 요해지에 쌓은 성이다. 성역은 1만 1,776평이고 성벽의 총연장은 300m, 둘레는 1㎞, 높이는 4m이다. 그리고 3단으로 축조되었으며, 기장성이라고도 한다.

이 지역은 전략상 요충지로 봉수대가 많이 설치되었다. 그 중 남산봉수는 985년(성종 4)에 설치되었다. 남쪽으로 동래현 우비오산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울산의 임량포에 접하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그리고 장안읍 효암리에는 기장 아이봉수대(부산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가 있다. 또한, 아미봉수대는 기장읍 죽성리의 기장남산봉수대(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1993년 지정)에 응하는 것이었으나 남산봉수와 함께 폐지되었다.

유교문화재로 기장읍 교리에 있는 기장향교(부산광역시 기념물, 1996년 지정)가 1617년(광해군 9)에 건립되었다. 거기에는 대성전을 비롯해 신삼문·명륜당·동재·서재·풍화루·세심문 등 7동의 건물이 있다.

동부리에 있는 군관청은 군장교들의 영빈관으로, 장관청은 군장관들의 집무소였다. 철마면 와여리의 의열사(義烈祠)는 단종 때 충신 김계금(金係錦)과 그의 현손으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일개(金一介)와 김일덕(金一德)을 배향하였다.

정관읍 달산리에 있는 기호대(沂湖臺)는 숙종 때의 시인 송시호(宋時豪)가 머물렀던 곳이다. 그리고 기장읍 대변리에 기장척화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96년 지정)가 있다. 이밖에 기장현감공덕비군과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오른 김득복묘(金得福墓)가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440년(세종 22)에 기장향교가 있다.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양하고 지방의 중등교육 및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그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7년(광해군 9)에 다시 복원했고, 1974년에 대성전을 보수하였다. 교위답(校位畓) 외에 접답(接畓)을 두어 학생들의 강학 비용을 보충하게 하였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5년 기장일어학교가 40명의 학생을 받아들인 것이 최초이다. 1911년 기장초등학교가 개설되면서 이후 각 면마다 학교가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0개교, 중학교 6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다.

기장읍에는 기장문화원이 있다. 1997년 11월 6일에 개원하였으며, 지역고유문화의 계발·보급·보존·전승을 선양하고 향토사의 조사 연구 및 사료를 수집 보존할 뿐만 아니라 지역전통문화의 국내외 교류와 지역문화에 대한 사회교육활동으로 지역환경보존과 문화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민속

이 지방의 세시의례 가운데 주부가 주관해 거행하는 정월 초하루의 성주제·조왕제·업장군제와 이월 초순의 영동할미제, 시월의 조상단지모시기·마소제 등이 있고, 주인이 주관해 거행하는 유월의 용신제와 시월의 배서낭제 등이 있다.

동제는 주로 정월 열나흗날 밤에 매년 거행하는 당산제와 2·3년의 간격을 두고 어촌마을에서 거행하는 별신굿이 있다. 이들 세시의례를 거행하는 목적은 가정이나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농·풍어의 기원에 있다.

그리고 벽사(辟邪)·기축(祈祝) 행사로는 정월 초하루의 복조리 달기·아이들의 조롱차기·까마귀밥주기, 정월 보름의 복토(福土) 훔쳐 뿌리기·달집태우기·과실나무 해거리 막기·호랑이그림 붙이기·제웅 만들어버리기·화재수(火災數) 막기·귀밝이술 먹기·부럼 깨물기·다리밟기·더위팔기 등이 있다.

그리고 삼월 삼짇날의 불공드리기, 사월 초파일의 탑돌이, 오월 단오의 창포물로 머리감기, 유월 유두날의 약물 맞기, 팔월 열 나흗날의 어린이 안질 막기, 동짓날의 팥죽 먹기, 섣달 그믐의 도깨비 모시기·메산에게 기원하기·잡귀를 쫓기 위한 볶은 고춧가루 뿌리기 등을 들 수 있다.

이방행사로는 정월 보름의 새삼 퇴치·뱀 퇴치·두더지 퇴치·노래기 퇴치·모깃불 놓기 등이 있다. 놀이행사로는 정초의 지신밟기, 정월 보름날의 널뛰기·쥐불놀이·줄다리기·연날리기, 오월 단오날의 그네뛰기·씨름놀이 등이 있다.

설화·민요

이 지방의 설화로는 원효대사와 관련된 사찰전설과 바위에 얽힌 전설이 많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정관읍 용수리 덕전마을을 지나다가 동해에서 큰 광명이 백운산 중턱에 비치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 가보니 미륵부처가 나타나 설법하고 있었다. 이에 원효대사가 “나는 여기에서 중생의 무상도를 기필코 이루겠다.” 하고 의상대사와 헤어져 백운산 상봉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 이것이 석탑사 전설이다.

또한, 중국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의 대들보가 무너져 내릴 때 원효대사가 소판(小板)을 던져 1000여 명 스님의 생명을 건졌다는 장안사의 척판암(擲板庵) 전설이 있다. 아울러 원효대사가 불도에 정진해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도달하고 적멸상(寂滅相)을 통달했다는 기장읍 내리 내동마을의 안적사 전설이 있다.

바위에 얽힌 전설로는, 일광면 삼성리 일광산 중턱의 쌍바위 전설 및 기장읍 만화리 뒷산의 쌍바위 전설이 있는데 그 내용은 같다. 총각 군노(郡奴)는 군수의 딸을 짝사랑하다가 그 딸이 시집가려 하자, 산신령에게 한 번만 그 딸을 만나게 해 달라고 지성껏 빌었다. 그러자 산신령이 나타나 만날 방도를 가르쳐 주었는데, 산신령은 만나더라도 일체 말을 하지 말라는 금기를 주었다. 그러나 군노는 그 딸을 만나게 되자 금기를 깨뜨려 그만 남녀가 바위로 변하였다.

또한, 어느 부자는 매일 찾아오는 식객(食客)을 성가시게 여기고 있었다. 마침 자신의 집을 찾아온 도사에게 그는 식객을 오지 않게 하는 방도를 물었다. 그러자 도사가 집 근처의 지형(地形)·지물(地物)을 훼손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집주인은 대사의 지시대로 지형·지물을 훼손했는데, 오히려 집안이 차차 빈궁하게 되었다. 이것이 철마면 연구리 구림마을의 생거북바위 전설이다. 그리고 일광면 화전리 당곡마을의 당곡사 전설, 장안읍 장안사 옆의 청용등 전설, 기장읍 죽성리 두호마을의 매바위 전설 등이 있다.

또한, 옛날 백동마을에 박씨라는 효부는 병든 시어머니가 먹고자 하는 가재를 깊은 산골에 가서 잡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나타나 효부를 해치려 하자, 매 한마리가 날아와 호랑이를 쫓아버리고 죽어 바위로 변했다는 기장읍 내리 소정마을의 매바위 전설이 있다.

그밖에 옛날 철마면 웅천리에 한 효자는 부친의 병을 고치고자 온갖 약을 구해 썼다. 그러나 효험이 없어 범바위굴에 가서 100일 기도를 하였다. 그러자 산신이 나타나 개 천 마리를 먹으면 부친의 병이 낫는다고 하고 범가죽과 범가죽을 입고 벗을 때 쓰는 자물쇠를 주고 사라졌다. 효자는 그 때부터 범 가죽을 쓰고 범이 되어 개를 잡아와 부친 병을 구완하였다. 부친이 900여 마리의 개를 먹자 병이 나았는데도 효자는 산신의 말대로 천 마리를 채우기 위해 범으로 변신해 나갔다. 이를 본 아내가 그만 자물쇠를 없애버려 결국 사람으로 변신하지 못하고 범이 되어 범바위굴에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는 범바위굴 전설이 있다.

그리고 철마면 연구리 마을에 살고 있던 서홍(徐弘)이라는 장정이 부산성의 입방군(入防軍)으로 복무하면서 개를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하루는 개와 더불어 횃불을 들고 개좌산 고개를 넘어오다 그만 잠이 들었다. 그 사이에 횃불이 풀섶으로 번지자 개가 개울에서 물을 묻혀와 잠든 주인의 주변에 뿌려 주인을 불에서 구해 주고 죽었다. 이것이 개좌산의 의구(義狗) 전설이다. 아울러 수행승(修行僧)과 용궁의 용녀와 비련(悲戀) 전설이 있는 기장읍 시랑리 공수마을의 시랑대동굴 전설이 있다.

이 지방에 전승되는 민요로는 노동요 가운데 농요인 「모찌기요」·「모심기요」·「논매기요」·「밭매기요」가 있으며, 어로요인「멸치후리소리」·「어방요」가 있다. 그리고 토목요인 「망깨소리」, 방적요인 「길쌈노래」·「베틀노래」가 있고, 의식요인「지신밟기소리」·「상여소리」·「액막이요」 및 비기능요인「달거리요」·「과부타령」·「징금이타령」·「시집살이요」·「진주난봉가」·「쌍가락지요」·「애원애기노래」등이 있다.

농요와 어로요는 선후창 또는 교환창으로 가창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방적요와 비기능요는 독창이 일반적이다. 특히,「달거리요」·「과부타령」·「액막이요」는 월령체로 되어 있고,「진주난봉가」·「애원애기노래」와 일부 길쌈노래는 서사민요로 되어 있다.

어로요인 「멸치후리소리」가운데 어촌인 월내의 소리를 보면, 노 젓는 소리, 그물 놓는 소리, 그물 당기는 소리, 그물 마지막 당기는 소리, 불통 마지막 후리는 소리, 후리소리, 고기 퍼내는 소리로 되어 있는데, 그중 노 젓는 소리, 그물 놓는 소리, 그물 마지막 당기는 소리, 불통 마지막 후리는 소리는 주로 ‘여∼사 여∼사, 이여란차 여∼사’ 의 무의미한 사설의 교환창이다. 그리고 그물 당기는 소리, 후리소리, 고기 퍼내는 소리는 자연풍광과 풍어의 기쁨을 내용으로 하는 사설로 된 교환창이다.

산업·교통

대부분의 토지가 개발제한구역에 속해 있으며 또한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이중 규제되고 있어 산업발달에 커다란 제약을 받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어업이지만 점차 그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농업의 경우, 2008년 현재 농가구수 3,710가구, 농가인구 1만 2975명으로 점차 감소추세에 있다. 총경지면적은 2,363㏊인데, 그중 논이 1,250㏊, 밭이 1,113㏊로 밭 면적의 확대로 논 면적이 점차 감소추세이다. 농가당 경영규모는 매우 영세한 편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한 식량작물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고소득작물인 채소·화훼 등의 시설원예작물 및 과수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도시화의 영향으로 휴경지가 증가해 식량작물의 생산은 점차 감소하는 실정이다.

지역특산물로 배·방울토마토·팽이 및 표고버섯·꽈리고추 등이 생산되며, 한우·젖소·돼지 등을 사육하는 축산업도 발달되어 있다. 어업은 동해남부어장의 중심지로, 기장미역·기장멸치·기장갈치 등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오징어·붕장어 등도 많이 잡힌다. 특히, 기장미역은 예로부터 엽체가 좁고 길며 부드러워 소문이 나 있다. 이 미역은 검게 광택이 나며, 쫄깃쫄깃한 맛과 미역 특유의 향이 좋은데, 1967년부터 양식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2008년 현재 어가구수 1,699가구, 어가인구 2,794명으로 농업에 비해서 그 비중이 낮다. 수산물 어획고는 총 5,188톤으로, 이 중 어류가 3,765톤을 차지한다. 근년에 이르러 폐수 및 오수의 유입과 적조현상 등으로 어획고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선박의 규모도 매우 영세하다.

공업은 농공단지가 있는 정관읍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업종별로는 조립금속 및 기계장비 제조업이 주를 이루고, 그외 식료품·섬유 및 의복·비금속광물·화학 및 고무 등의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정관농공단지는 1987년에 지정되어 약 8만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이에 기계·자동차부품 관련업종을 중심으로 20여 개 업체가 있다. 장안읍 고리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있는데, 1978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고리1호기가 가동된 이후 1986년까지 고리 2·3·4호기가 건설되어 총 314만㎾의 발전시설 용량을 갖추고 있다. 시장으로는 상설시장인 기장시장이 기장읍에 있고, 정기시장으로는 장안읍에 좌천장이 4·9일, 월내장이 2·7일, 철마면에 송정장이 5·10일에 개장된다.

교통은 부산∼은성간 국도 7호선이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철마면과 양산시 동면의 경계를 지나 정관읍 북서부를 통과한다. 그리고 거제∼울산간 국도 14호선이 군의 남쪽에서 철마면 남부지역과 기장읍 북부지역을 동서로 지나 일광면과 장안읍을 남북으로 통과한다. 그밖에 송정∼덕하간 1019번 지방도와 월평∼월내간 1012번 지방도가 통과한다. 다수의 군도·농어촌도로 등이 있으나 대체로 도로 폭이 협소하고, 도로율은 매우 낮다. 특히, 부산∼울산간 승객이 증가함에 따라 교통체증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안도로의 정비와 기존 도로의 확장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철도의 경우 동해남부선이 통과하며, 기장역·좌천역·일광역·월내역 등이 있다.

관광

수려한 해안선과 천혜의 자연경관과, 역사적인 문화유적이 풍부하다. 그리고 해운대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국제적 관광지를 이루고 있는 해운대관광특구가 인접하고 있어 관광개발의 잠재력이 풍부한 지역이다.

총 길이 36㎞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기장읍 대변리·연화리와 일광면 칠암리를 비롯해 곳곳에 신선한 자연산 회로 유명한 횟집이 밀집해 있고, 연간 40만 명 이상의 피서 및 관광객이 이용하는 일광해수욕장과 임랑해수욕장은 도시민의 휴식·관광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외 해안관광자원으로 해동용궁사·시랑대·오랑대·황학대 등 절경지와 고리원자력발전소도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총면적의 70% 이상이 산지로, 자연공원인 상태가 많아 내륙관광자원으로 개발될 여지가 많다.

특히, 장안사가 있는 불광산 지역은 경관이 뛰어나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관광자원으로 1593년(선조 26)에 축조된 기장읍의 죽성리성을 비롯해, 장안읍 장안리의 장안사와 장안사대웅전, 그리고 기장읍성 등이 있다.

읍·면
  1. 기장읍(機張邑)

군의 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39.18㎢, 인구 5만 231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대라리이다. 신라시대 이후 기장현 지역이었으며, 1895년에 기장군으로 개편되면서 읍내면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장군이 동래군에 통합되면서 남면의 내동·석산 등 6개 이와 동면의 교동·만화동과 부산부 동하면의 좌동 일부를 병합해 기장면으로 개편되었다. 1973년에 동래군이 폐지되면서 양산군에 편입되었으며, 1980년 기장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에 양산군 동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95년에 동부출장소가 기장군으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동부해안 가까이에는 봉대산(峰臺山)·연화봉(連花峰), 서부에는 양달산(陽達山)·구곡산(九谷山) 등의 고도 100∼200m의 낮은 산지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이들 산지 사이를 송정천(松亭川)·죽성천(竹城川)·만화천(萬化川)·서부천(西部川) 등이 동해로 흘러든다. 동부의 대변포(大邊浦) 동쪽 800m 해상에는 죽도(竹島)가 있다. 농업은 논농사가 중심이나 채소·화훼 등의 시설원예작물의 생산도 성하며, 방울토마토·표고버섯 등이 지역특산물로 재배된다. 군의 중심항인 대변항을 중심으로 어류 어획과 양식에 의한 해조류 생산이 많다. 특히, 기장미역·기장멸치·기장갈치 등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식료품·섬유·제지·금속 등의 제조업체도 다수 발달하고 있으며, 상설시장인 기장시장에서는 지역특산물을 비롯한 각종 농·수산물과 생활잡화류가 거래되고 있다. 군청이 소재하고 있고, 은행 등 금융기관이 집중해 군의 행정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1995년 부산시 편입과 더불어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그에 따라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대단위 택지개발 및 아파트건설이 활발하다.

읍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동해남부선과 송정∼덕하간 1019번 지방도가 통과하고, 북서부에는 거제∼울산간 14번 국도가 지난다. 대변리·연화리 일대에는 횟집이 밀집해 있고, 해동용궁사와 죽도의 절경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문화유적은 죽성리의 죽성리성을 비롯해 기장남산봉수대·두모포영지 등이 있다. 그리고 동부리의 기장현감공덕비군, 교리의 기장향교, 청강리의 고분군, 대변리의 기장척화비·김득복묘(金得福墓), 만화리의 차건신묘(車建申墓)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5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대라(大羅)·동부(東部)·서부(西部)·만화(萬化)·교(校)·신천(新川)·청강(淸江)·내(內)·석산(石山)·당사(堂社)·시랑(侍郞)·연화(蓮花)·대변(大邊)·죽성(竹城) 등 14개 법정리가 있다.

  1. 장안읍(長安邑)

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50.89㎢, 인구 1만 27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좌천리이다. 신라시대 이후 기장현 지역으로 1895년에 기장군으로 개편되면서 상북면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장군이 폐지되면서 중북면의 좌천·월내 등 7개 이와 하북면의 내덕동, 울산군 외남면의 효열동 일부를 병합해 장안골의 이름을 따서 장안면이라 하고, 동래군에 편입되었다. 그뒤 1973년에 동래군이 폐지됨에 따라 양산군에 편입되고, 1985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에 양산군 동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95년에 동부출장소가 기장군으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서부지역은 석은덤·삼각산(三角山) 등 고도 400∼500m 산지로 구성되어 있고, 서부 및 해안지역은 낮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명례리에서 발원한 효암천(孝巖川), 장안리에서 발원한 장안천(長安川), 정관읍 병산리에서 발원해 좌천리·임랑리 지역을 흐르는 좌광천(佐光川) 등이 동해로 흘러든다. 그리고 용소리에서 발원한 용소천(龍沼川)은 장안천에, 덕선리에서 발원한 덕선천(德仙川)은 좌광천에 각각 합류한다. 농업은 논농사가 중심이고, 메론·배·흑미 등이 지역특산물로 재배된다. 그리고 목축업도 성하다. 해안과 하천연안에서는 어류 어획·양식 등 어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리에는 총 314만㎾의 발전시설용량을 갖추고 있는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정기시장으로 좌천시장(4·9일)과 월내시장(2·7일)이 있어, 지역특산물을 비롯한 각종 농·수산물과 생활잡화류가 거래되고 있다. 교통은 거제∼울산간 14번 국도가 읍의 가운데를 남북으로 통과한다. 그리고 동남쪽 해안을 따라 송정∼덕하간의 1019번 지방도와 동해남부선이, 남쪽에는 동서로 월평∼월내간 1012번 지방도가 지난다. 좌광천에서 나오는 돌은 질이 좋고, 녹색·황색·흑색 등의 다채로운 경석(景石)이 유명하다.

문화유적은 장안리에 장안사 대웅전, 효암리에 이길봉수대가 있다. 덕선리의 이팝나무는 수령 700년이 넘는 당산목으로, 이 나무의 꽃이 고르게 피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장안리의 느티나무도 수령 1300년의 당산목이다. 임랑해수욕장과 장안사가 있는 불광산군립공원은 관광명승지로 관광 및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 해안을 따라 횟집이 많으며, 관읍사·선암사 등의 사찰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좌천(左川)·좌동(左東)·덕선(德仙)·기룡(奇龍)·장안(長安)·명례(鳴禮)·오(五)·반룡(盤龍)·효암(孝巖)·용소(龍沼)·고(古)·길천(吉川)·월내(月內)·임랑(林浪) 등 14개 법정리가 있다.

  1. 일광면(日光面)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5.76㎢, 인구 9,23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삼성리이다. 본래 기장군 지역으로 1895년에 기장군으로 개편되면서 동면이라 해 이천·이동·조전 등 10개 이를 관할하였다. 그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장군이 폐지되면서 중복면의 문동·문중 등 5개 이를 병합해 일광산(日光山)의 이름을 따서 일광면이라 하여 동래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에 동래군이 폐지됨에 따라 양산군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86년에 양산군 동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95년에 동부출장소가 기장군으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북쪽 및 북서쪽에는 달음산·천마산·함박산, 서쪽에는 아홉산, 남서쪽에는 일광산 등이 인접 읍·면과의 경계를 이룬다.

이들 산지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 소지류들이 면의 중앙부를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일광천에 모여 동해로 흘러들며, 하천 연변에는 소규모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에 속해 있으며 임야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농업은 논농사가 중심이며, 목장지대가 조성되어 축산업도 성하다. 해안과 하천연안에서 어류 어획과 양식 등 어업이 발달하고 있다. 기포마을에서 양질의 검은 바둑돌이 생산된다. 그리고 일광해안에서 채색무늬의 돌과 단봉원산석(單峰遠山石)·추상석(抽象石) 등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동백리 일대에서는 바닷가뿐 아니라 낮은 산에서도 음각의 균열로 이루어진 흰무늬가 귀갑(龜甲)처럼 새겨진 깨돌이 나온다. 교통은 면의 동쪽에 남북으로 거제∼울산간의 14번 국도와 동해남부선이 통과하며, 동쪽 해변을 따라서 송정∼덕하간의 1019번 지방도가 통과한다. 삼성리의 일광해수욕장과 동백리의 동백해안은 관광명승지로 관광 및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

문화유적은 횡계리에 월명사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삼성(三聖)·학(鶴)·이천(伊川)·동백(冬栢)·신평(新平)·칠암(七巖)·문중(文中)·문동(文東)·원(院)·청광(靑光)·화전(花田)·용천(龍川)·횡계(橫溪) 등 13개 법정리가 있다.

  1. 정관읍(鼎冠邑)

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38.21㎢, 인구 5,639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방곡리이다. 본래 기장군 지역으로 달산·예림·대전 등 12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장군이 폐지되면서 하서면 월평·임곡 등 4개 이를 병합하고 정관면이라 한 뒤 동래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동래군이 폐지됨에 따라 양산군에 편입되었고, 1986년에 양산군 동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비로소 동부출장소가 기장군으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2015년 9월 정관면에서 정관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쪽에는 용천산(湧川山), 서쪽에는 백운산(白雲山), 남쪽에는 문래봉(文來峰)·달음산月陰山·천마산(天馬山) 등의 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들 산지 사이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 소지류들이 면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좌광천(佐光川)으로 흘러들며, 하천연안에는 소규모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다. 좌광천의 돌은 질이 좋고 녹색·황색·흑색 등의 다채로운 색감을 가진 경석(景石)·물형(物形) 등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다. 개발제한구역의 면적은 군내에서 그 비율이 가장 낮다. 임야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농업은 논농사가 중심이며, 하천연안에서는 내수면 어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군내에서 제조업이 가장 발달한 지역으로, 기계·자동차부품 관련 업종을 중심으로 군내 제조업체의 86.2%가 집중되어 있다.

또한, 군내에서 유일하게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제2농공단지를 조성해 도시형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등 농공병행 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면의 북서쪽에 부산∼은성간의 7번 국도가 지나며,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좌광천을 따라 월평∼월내간 1012번 지방도가 면의 중앙부를 가로지르며 지나간다.

문화유적은 달산리의 기호대(沂湖臺), 매학리의 느티나무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2개교가 있고, 한국폴리텍7대학 동부산캠퍼스가 있다. 방곡(芳谷)·예림(禮林)·달산(達山)·매학(梅鶴)·용수(龍岫)·모전(募田)·병산(屛山)·두명(斗明)·임곡(林谷)·월평(月坪) 등 10개 법정리가 있다.

  1. 철마면(鐵馬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3.94㎢, 인구 5,06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와여리이다. 본래 기장군 지역으로 기장읍내 서쪽이 되므로 상서면이라 해 각암·이곡·연구 등 12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장군이 폐지되면서 하서면 임석·임기 2개 이와 원동면 만화동 일부를 병합하고, 이곳에 있는 철마산의 이름을 따서 철마면이라 한 뒤 동래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동래군이 폐지됨에 따라 양산군에 편입되었고, 1986년에 양산군 동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그뒤 1995년에 동부출장소가 기장군으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백운산(白雲山)·망월산(望月山)·철마산(鐵馬山) 등 고도 500m 이상의 산지들이 남북으로 연봉을 이룬다. 하천으로는 수영강이 서쪽의 양산시 동면과의 경계를 이루며, 중앙부를 흐르는 철마천·구칠천·이곡천 등과 북서부 지역을 흐르는 송정천·임기천 등의 소지류가 수영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004년 현재 면 전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농업은 논농사가 중심이고, 목축업도 발달하고 있으며, 하천연안에서는 내수면 어업이 이루어진다. 정기시장인 송정시장(5·10일)에서는 각종 농산물과 생활잡화류가 거래되고 있다.

교통은 면의 남쪽에 거제∼울산간의 14번 국도가 통과하며, 이 외에도 곳곳에 군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연구리에 달성서씨 효자비와 송상덕(宋尙德)의 처 월성김씨의 열녀비가 있으며, 와여리에 의열사(義烈祠), 웅천리에는 수리정비(愁離亭碑)라는 유허비가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와여(瓦余)·백길(栢吉)·웅천(熊川)·연구(蓮龜)·이곡(耳谷)·구칠(九七)·고촌(古村)·안평(安坪)·장전(長田)·송정(送亭)·임기(林基) 등 11개 법정리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군정백서』(부산광역시 기장군, 1997)
『기장군 문화유적과 기층문화』(김승찬 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1997)
『내고장 전설』(양산군, 1988)
『한국지지』(건설부국립지리원, 1985)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부산광역시 기장군(www.gij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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