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문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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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은 조선 후기 병조참지, 예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중화, 호는 농암, 삼주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651년(효종 2)에 출생하여 1708년(숙종 34)에 사망했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칠정이 이와 기를 겸했더라도 그 선함은 기가 능히 이를 따름이요, 그 선하지 않음은 기가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이니, 처음부터 기가 주된 것이다.”라며 이이의 기발이승설을 지지하였다. 문장은 단아하고 순수하며, 시는 고상하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로는 『농암집』 등이 있다. 양주의 석실서원에 제향되었다.
김창협 (金昌協)
김창협은 조선 후기 병조참지, 예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중화, 호는 농암, 삼주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651년(효종 2)에 출생하여 1708년(숙종 34)에 사망했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칠정이 이와 기를 겸했더라도 그 선함은 기가 능히 이를 따름이요, 그 선하지 않음은 기가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이니, 처음부터 기가 주된 것이다.”라며 이이의 기발이승설을 지지하였다. 문장은 단아하고 순수하며, 시는 고상하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로는 『농암집』 등이 있다. 양주의 석실서원에 제향되었다.
『민문정유고』는 조선 후기의 문신, 민유중의 시·서(書)·차자·상소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0권 10책의 필사본이다. 이 책은 산절과 교정,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상적인 문집 체재를 갖추지 못한 유고로 가편집본의 사본으로, 내용의 분류와 편차에 질서가 없다. 민유중은 인현왕후의 아버지로서 송시열을 추종한 노론의 중진이자 외척관료로서 오랫동안 권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따라서 이 유고는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의 분열·대립·갈등을 보여 주는 많은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는 당쟁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다.
민문정유고 (閔文貞遺稿)
『민문정유고』는 조선 후기의 문신, 민유중의 시·서(書)·차자·상소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0권 10책의 필사본이다. 이 책은 산절과 교정,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상적인 문집 체재를 갖추지 못한 유고로 가편집본의 사본으로, 내용의 분류와 편차에 질서가 없다. 민유중은 인현왕후의 아버지로서 송시열을 추종한 노론의 중진이자 외척관료로서 오랫동안 권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따라서 이 유고는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의 분열·대립·갈등을 보여 주는 많은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는 당쟁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다.
조사수는 조선 중종~명종 대 의정부 좌참찬, 사간원 대사간, 성균관 대사성,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대간 직을 두루 거쳤으며 문장 실력과 인품 등에서 동료 관료들에게 높을 평가를 받았다. 명종 대에는 더욱 중용되어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 등을 모두 역임하였다. 종계변무(宗系辨誣) 문제 해결을 위해 주청사(奏請使)로 중국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조사수 (趙士秀)
조사수는 조선 중종~명종 대 의정부 좌참찬, 사간원 대사간, 성균관 대사성,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대간 직을 두루 거쳤으며 문장 실력과 인품 등에서 동료 관료들에게 높을 평가를 받았다. 명종 대에는 더욱 중용되어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 등을 모두 역임하였다. 종계변무(宗系辨誣) 문제 해결을 위해 주청사(奏請使)로 중국 명나라에 파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