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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전투는 1253년(고종 40) 몽골의 제5차 침입 때 충주성(忠州城)에서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몽골군이 고려의 남부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충주성을 반드시 점령해야 했던 반면, 고려 또한 이를 저지해야 할 명운이 걸린 전투였다. 충주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김윤후(金允侯)라는 뛰어난 장수의 활약과 일반 민의 적극적인 협력 덕분이었다. 이를 계기로 충주가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었다.
충주전투 (忠州戰鬪)
충주전투는 1253년(고종 40) 몽골의 제5차 침입 때 충주성(忠州城)에서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몽골군이 고려의 남부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충주성을 반드시 점령해야 했던 반면, 고려 또한 이를 저지해야 할 명운이 걸린 전투였다. 충주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김윤후(金允侯)라는 뛰어난 장수의 활약과 일반 민의 적극적인 협력 덕분이었다. 이를 계기로 충주가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었다.
해도입보책은 고려 정부가 몽고침입에 대응하여 지방 군현민을 해도로 입보시킨 정책이다. 해도입보전략이라고 한다. 몽골 침입 이전에는 외적이 침입해 오면 군현의 치소가 있는 성에 들어가서 대응하였다. 몽골 침입 당시에는 대몽항전을 위한 전략으로 해도를 입보처로 선택하였다. 강화천도가 결정되고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여 장기전을 도모하며 국가의 강압과 강제에 의해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소극적인 방어책이나 수전(水戰)에 상대적으로 약한 몽고군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 효과적 전술로 몽골과의 30년 장기전을 이끌었던 원동력으로 평가되었다.
해도입보책 (海島入保策)
해도입보책은 고려 정부가 몽고침입에 대응하여 지방 군현민을 해도로 입보시킨 정책이다. 해도입보전략이라고 한다. 몽골 침입 이전에는 외적이 침입해 오면 군현의 치소가 있는 성에 들어가서 대응하였다. 몽골 침입 당시에는 대몽항전을 위한 전략으로 해도를 입보처로 선택하였다. 강화천도가 결정되고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여 장기전을 도모하며 국가의 강압과 강제에 의해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소극적인 방어책이나 수전(水戰)에 상대적으로 약한 몽고군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 효과적 전술로 몽골과의 30년 장기전을 이끌었던 원동력으로 평가되었다.
산성입보책은 고려 정부가 몽고침입에 대응하여 지방 군현민을 험준한 산성으로 입보시킨 정책이다. 몽골 침입 이전에는 외적이 침입해 오면 군현의 치소가 있는 성에 들어가서 대응하였다. 대몽항전을 위한 전략으로 치소에서 멀리 떨어진 험준한 산성을 입보처로 선택하였다. 강화를 체결한 이후로도 몽고에 대항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지방관 통솔 하에 입보하였는데 산성방호별감, 산성겸권농별감 등이 파견되어 입보민을 지휘 통제하였다. 지역 방어 방식이 개별적 군현의 치소성에서 복수의 군현을 포괄하는 광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성입보책 (山城入保策)
산성입보책은 고려 정부가 몽고침입에 대응하여 지방 군현민을 험준한 산성으로 입보시킨 정책이다. 몽골 침입 이전에는 외적이 침입해 오면 군현의 치소가 있는 성에 들어가서 대응하였다. 대몽항전을 위한 전략으로 치소에서 멀리 떨어진 험준한 산성을 입보처로 선택하였다. 강화를 체결한 이후로도 몽고에 대항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지방관 통솔 하에 입보하였는데 산성방호별감, 산성겸권농별감 등이 파견되어 입보민을 지휘 통제하였다. 지역 방어 방식이 개별적 군현의 치소성에서 복수의 군현을 포괄하는 광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 후기에, 좌창별감, 금강성 방호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왕중선 (王仲宣)
고려 후기에, 좌창별감, 금강성 방호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방호별감으로 양산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무신.
권세후 (權世侯)
고려후기 방호별감으로 양산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