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253년(고종 40), 몽골의 제5차 침입 때 충주성(忠州城)에서 승리를 거둔 전투.
배경 및 발단
경과 및 결과
그러나 포위 당한 날이 모두 70여 일이나 되어 군량이 거의 고갈되어가자 사기가 떨어지므로, 김윤후는 사졸들을 독려하여 이르기를 “이 싸움에서 승리만 하면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고 모두 관작(官爵)을 내리겠다.”라고 하며, 관노(官奴)의 부적(簿籍)을 불살라 믿음을 보이고 또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누어 주었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죽기를 맹세하여 싸웠다. 결국 그해 12월에 몽골군은 충주성을 포위한 지 70여 일 만에 그대로 물러갔으며, 더는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하였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신안식, 『고려 무인정권과 지방사회』(경인문화사, 2002)
- 윤용혁, 『고려대몽항쟁사연구』(일지사, 1991)
논문
- 김호준, 「고려 대몽항쟁기 김윤후장군의 3차례 승전의 의의」(『백산학보』 114, 백산학회, 2019)
- 신안식, 「대몽항쟁기 민의 동향」(『역사와 현실』 7, 한국역사연구회, 1992)
- 윤용혁, 「13세기 몽고의 침략에 대한 호서지방민의 항전」(『호서문화연구』 4,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198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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