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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증해(家禮增解)』는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의조가 『가례』에 실려 있지 않은 변례(變禮)를 채록하여 증보하고 『가례』에 제시된 명물 도수의 의미를 고례(古禮)에 근거하여 해설한 예서이다. 이와 함께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시행할 때 필요한 인원과 기물을 『가례의절』과 『상례비요』에 근거해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행례시에 참조하기 편리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 점에서 본서는 행례와 고증 그리고 변례와 관련하여 조선에서 진행된 민간 의례 연구를 집대성한 저술로서 위상을 가진다.
가례증해 (家禮增解)
『가례증해(家禮增解)』는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의조가 『가례』에 실려 있지 않은 변례(變禮)를 채록하여 증보하고 『가례』에 제시된 명물 도수의 의미를 고례(古禮)에 근거하여 해설한 예서이다. 이와 함께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시행할 때 필요한 인원과 기물을 『가례의절』과 『상례비요』에 근거해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행례시에 참조하기 편리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 점에서 본서는 행례와 고증 그리고 변례와 관련하여 조선에서 진행된 민간 의례 연구를 집대성한 저술로서 위상을 가진다.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박세채 (朴世采)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사례석의』는 조선 후기 『가례』의 내용 중 의례와 변례에 관한 예설을 모아 엮은 예서이다. 『가례』의 내용 중에 의구심이 드는 의례나 『가례』에 제시되지 않은 변례에 대해 조선시대 예학자들의 다양한 해석과 답변을 수록하였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의례나 변례에 대한 답변을 조선시대 유학자 11명의 예설만으로 편찬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조선의 예학이 자체 역량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 준다.
사례석의 (四禮釋疑)
『사례석의』는 조선 후기 『가례』의 내용 중 의례와 변례에 관한 예설을 모아 엮은 예서이다. 『가례』의 내용 중에 의구심이 드는 의례나 『가례』에 제시되지 않은 변례에 대해 조선시대 예학자들의 다양한 해석과 답변을 수록하였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의례나 변례에 대한 답변을 조선시대 유학자 11명의 예설만으로 편찬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조선의 예학이 자체 역량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