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보태평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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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조선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된 〈보태평〉 중 세 번째 곡이다. 4언 12구의 한시로, 익조(翼祖)가 적도(赤島)에서 덕원(德源)으로 돌아와 살 때, 따라오는 사람이 많았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의인〉 곡 전체가 〈귀인(歸仁)〉으로 바뀌었다.
의인 (依仁)
<의인>은 조선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된 〈보태평〉 중 세 번째 곡이다. 4언 12구의 한시로, 익조(翼祖)가 적도(赤島)에서 덕원(德源)으로 돌아와 살 때, 따라오는 사람이 많았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의인〉 곡 전체가 〈귀인(歸仁)〉으로 바뀌었다.
<창휘>는 1447년(세종 29) 이전에 회례에 사용하기 위해 창제된 ⟪보태평지무악⟫ 아홉 개의 변(變) 중 제7변의 정재이자 음악이다. <창휘>의 가사는 태종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때를 당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사실을 보고하니, 천자(天子)가 융숭한 예로 대우하였다는 내용이다. ⟪보태평지무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함으로 인해, <창휘>의 가사와 선율을 축소하고, 악곡명을 <용광>으로 바꾸어 종묘제례악 《보태평》의 여덟 번째 곡으로 편입하였다.
창휘 (昌徽)
<창휘>는 1447년(세종 29) 이전에 회례에 사용하기 위해 창제된 ⟪보태평지무악⟫ 아홉 개의 변(變) 중 제7변의 정재이자 음악이다. <창휘>의 가사는 태종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때를 당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사실을 보고하니, 천자(天子)가 융숭한 예로 대우하였다는 내용이다. ⟪보태평지무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함으로 인해, <창휘>의 가사와 선율을 축소하고, 악곡명을 <용광>으로 바꾸어 종묘제례악 《보태평》의 여덟 번째 곡으로 편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