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휘>는 1447년(세종 29) 이전에 주1에 사용하기 위해 창제된 ⟪보태평지무악⟫ 제7변의 정재이자 음악이다. 정재의 주2는 없고, 가사는 『세종실록』 116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악보는 『세종실록』 권138에 수록되어 있다. 1493년(세조 9) ⟪보태평지무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함으로 인해, <창휘>의 선율과 가사를 축소하고, 악곡명은 <용광>으로 바꾸어, 종묘제례악 보태평 11곡 중 여덟 번째 일무이자 음악으로 편입하였다.
1626년(인조 4)에 〈중광〉을 《보태평》에 주3으로 인해 악곡의 수가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하자, 인입(引入)장과 인출(引出)장을 제외한 악곡의 수를 아홉 개로 만들기 위해 〈용광〉과 〈정명〉 두 곡을 연결한 <용광정명>으로 하나의 일무와 음악으로 만들었고,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정재 <창휘>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용광>으로 바뀐 뒤의 정재는 『악학궤범』에 기록되어 있고, 중종(재위: 1506~1544) 때까지 전승되었으나, 현재는 전승이 단절되었다.
⟪보태평지무악⟫은 인입장, 아홉 개의 변(變)과 아홉 개의 편(篇), 인출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휘>는 ⟪보태평지무악⟫ 제7변의 제1편이다. <창휘>의 가사는 4언 10구로 구성되어 있고, 선율은 32정간 1행, 5행 1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현음은 임(㑣:G3), 남(㑲:A3), 황(黃:C4), 태(太:D4), 고(姑:E4), 임(林:G4), 남(南:A), 황(潢:C5), 태(汰:D5)이고, 5음 음계이다. 『세종실록』 악보의 박법은 네 글자마다 박을 한 번 치며[四字一拍], 10박이 한 곡을 이루고 있다[10拍一聲]. 장구는 고편쌍고 편고편쌍고 패턴을 두 번 반복한 후 첫 번째 줄의 패턴을 한 번 더 반복한다.
<창휘>의 가사는 태종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때를 당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사실을 보고하니, 천자(天子)가 주4 예로 대우하였다는 내용이다.
천자방제(天子方懠) 천자(天子)가 성을 내면
즉미가석(則未可釋) 풀 수가 없는지라.
오황성고(於皇聖考) 크시도다, 거룩하신 아버님께서
염아종우(念我宗祐) 선대의 영위[宗祐]를 염려하시매,
기탄아예(豈憚我勩) 몸소 수고를 어찌 꺼리시랴
행매유극(行邁維亟) 멀리 다니심이 몹시 바쁘셨네.
부주기명(敷奏旣明) 사실을 보고함이 이미 분명하매
충성이창(忠誠以彰) 충의와 정성이 밝히 드러났도다
미우천자(媚于天子) 천자(天子)도 기뻐하니
혁재용광(赫哉龍光) 빛나도다 용광(龍光)이시여.
(출처: 국역 조선왕조실록. https://sillok.histor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