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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한은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나성지방회 재무, 구미위원부 사무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 대한 선전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1916년 미국 유학을 떠나 로스앤젤레스공립중학교를 다녔다. 클리블랜드와 애크론에 살면서 3·1절 경축식을 거행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공개편지』를 창간해 한국 독립을 위한 선전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샌프란시스코 초대 총영사로 활동하였다. 이승만의 정치 선전 활동을 전개하다가 한인들로부터 총영사 소환 요구를 받고 1960년 사임하였다.
주영한 (朱榮翰)
주영한은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나성지방회 재무, 구미위원부 사무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 대한 선전 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다. 1916년 미국 유학을 떠나 로스앤젤레스공립중학교를 다녔다. 클리블랜드와 애크론에 살면서 3·1절 경축식을 거행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공개편지』를 창간해 한국 독립을 위한 선전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샌프란시스코 초대 총영사로 활동하였다. 이승만의 정치 선전 활동을 전개하다가 한인들로부터 총영사 소환 요구를 받고 1960년 사임하였다.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는 미주 한인들에 의해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민족혁명당을 후원하고 미주 내 선전 및 외교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민족혁명당의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에 합류된다는 사실을 접하고 1942년에 결성했다. 결성 초기 회장은 변준호, 총무는 김강 등 대부분 미국 내 진보적인 한인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민족혁명당에 대한 자금원조 및 군사 운동을 위한 군사금 모금 활동에 주력했다. 기관지 『독립』을 발행했는데 1955년까지 지속했다. 이 단체는 미주한인사회에 새로운 정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 (朝鮮民族革命黨 美州總支部)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는 미주 한인들에 의해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민족혁명당을 후원하고 미주 내 선전 및 외교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민족혁명당의 조선의용대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에 합류된다는 사실을 접하고 1942년에 결성했다. 결성 초기 회장은 변준호, 총무는 김강 등 대부분 미국 내 진보적인 한인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민족혁명당에 대한 자금원조 및 군사 운동을 위한 군사금 모금 활동에 주력했다. 기관지 『독립』을 발행했는데 1955년까지 지속했다. 이 단체는 미주한인사회에 새로운 정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우라키』는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가 1925년부터 1936년까지 연간으로 발간한 기관지이다. 1925년, 1926년, 1928년, 1930년, 1931년, 1933년, 1936년에 이르기까지 통권 7호를 발간했다. 편집부장[혹은 총편집, 주필]은 제4호까지 오천석이었고, 5호는 전영택, 6호는 정일형, 7호는 김태선으로 이어졌다.
우라키
『우라키』는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가 1925년부터 1936년까지 연간으로 발간한 기관지이다. 1925년, 1926년, 1928년, 1930년, 1931년, 1933년, 1936년에 이르기까지 통권 7호를 발간했다. 편집부장[혹은 총편집, 주필]은 제4호까지 오천석이었고, 5호는 전영택, 6호는 정일형, 7호는 김태선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