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키』는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가 1925년부터 1936년까지 연간으로 발간한 기관지이다. 1925년, 1926년, 1928년, 1930년, 1931년, 1933년, 1936년에 이르기까지 통권 7호를 발간했다. 편집부장[혹은 총편집, 주필]은 제4호까지 오천석이었고, 5호는 전영택, 6호는 정일형, 7호는 김태선으로 이어졌다.
『우라키』는 1925년 9월 26일 미국 한국유학생조직인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北美大韓人留學生總會, The Korean Student Federation of North American)의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1919년 3·1운동으로 민족의식이 고양되고, 조선총독부의 미국 유학 허가로 1920년대 들어 미국 유학생이 증가하였다. 이를 배경으로 1921년 4월 30일,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가 결성되었다.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는 1922년부터 「The Korean Student Bulletin」[『한국학생회보』]를 발간했고, 1923년부터 북미대한인유학생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1925년 기관지 『우라키』를 발간했다. 우라키는 록키(Rocky)산맥의 한글 발음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연간지로 1925년, 1926년, 1928년, 1930년, 1931년, 1933년, 1936년에 이르기까지 통권 7호를 발간했다.
잡지의 편집은 유학생총회의 편집부가 담당했는데, 편집부는 편집부장과 분야별 편집담당자로 구성 되었다. 편집부장[혹은 총편집, 주필]은 제4호까지 오천석(吳天錫)이었고, 5호는 전영택(田榮澤), 6호는 정일형(鄭一亨), 7호는 김태선(金泰善)으로 이어졌다. 편집진들은 동부지역은 물론 중서부지역에 위치한 대학의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구성되었고, 전공에 따라 종교철학, 교육, 사회과학, 자연과학, 경제, 문예, 기사 등으로 나누어 분담하였다. 창간호의 편집부원은 김도연(金度演), 김활란(金活蘭), 유형기(柳瀅基), 장세운(張世雲), 황창하(黃昌夏) 등이었다. 유학생총회 본부가 위치한 시카고대학에 다녔던 장세운이 제1호부터 7호까지 가장 길게 편집부원으로 참여하였다.
『우라키』는 유학생 뿐만 아니라 국내 동포를 대상으로 한 잡지였다. 편집부장 오천석은 『우라키』의 발간 목적이 유학생의 형편을 고향에 알리고, 자신들이 얻은 문명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때문에 이들은 편집한 원고를 국내로 보내 인쇄하여 배포하도록 했다. 당연히 조선총독부의 사전 검열을 받아 간행되었다. 국내 편집 겸 발행인은 제1호와 제2호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였던 안동원(安東源)이었고, 제3호는 도이명[都伊明, 미국인], 제4호는 연희전문학교 교수 피시어[皮時漁, 미국인], 제5호 월간 『신생(新生)』 편집인 방인근(方仁根), 제6호 보성전문학교 교수 오천석, 제7호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김명선(金鳴善)이었다. 인쇄는 제1호에서 제3호까지 조선기독교 창문사 인쇄부, 제4호는 대동인쇄주식회사, 제5호부터 제7호는 한성도서주식회사였다.
『우라키』 창간호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李承晩)과 강영승(姜永昇), 김려식(金麗植)의 글을 권두에 실었다. 염광섭(廉光燮)이 「재미조선학생의 현상 급 장래」를, 장리욱(張利郁)이 「교육학 견지에서 관찰하는 미유학생의 심리상 경험」을, 백일규(白一圭)가 「조선공업의 역사적 연구」를, 김도연이 「산업의 과학적 경영에 대한 고찰」을, 오정수(吳楨洙)가 「애타주의의 이면」을 싣는 등 다양한 논설을 게재하였다. 장리욱의 희곡을 비롯해 몇 개의 비평과 소설도 수록되었다. 그 외에도 미국의 운동계와 대학 생활, 미국 예절 등을 소개하고, 재미 유학생 통계표와 졸업생 일람표, 유학생총회 약사와 임원 등을 알렸다.
『우라키』에는 다양한 글들이 수록되었다. 경제 관련으로는 이경화(李敬華)가 「세계의 면화종류와 산업 급 조선」을, 김형남(金瀅楠)이 「고무공업과 인조고무의 발달」을, 문장욱은 「달러 정책의 전개」와 「국제 경제적 위기와 전망」을, 한승인(韓昇寅)은 「실업정책론」, 이훈구(李勳求)는 「생산사업상 비준보수이법칙(比準報酬二法則)의 연쇄작용」, 「조선대미무역 10년사」를, 최황(崔晃)이 「조선을 산업화하자」를, 김훈(金壎)은 「토지경제와 조선현상 약론」을, 고황경(高凰京)은 「소비 경제의 중대성」을 게재했다. 과학 관련으로는 한치관(韓稚關)이 「과학과 이상계」, 장세운이 「수리학의 기초적 개념의 현대혁명」을, 김진억(金鎭億)이 「과학적 연구의 기초」를, 조응천(曹應天)이 「무전선의 원리」를, 갈홍기(葛弘基)가 「소위 과학철학의 반동성」을 수록했다. 사회 관련으로는 고황경이 「미국 이민역사와 장래의 정책」, 박인덕(朴仁德)이 「조선여자와 직업문제」를 게재했다.
교육 관련으로는 오천석이 「미국의 교육계」와 「고국사회에 대한 비판과 충언 – 조선교육계에」를, 최윤호(崔允鎬)가 「교육학상 입장에서 조선인의 장래성을 논함」을, 조승학(曹承學)이 「교육제도비판론」을 수록했다. 미국의 각 분야 동향에 대해서는 이철원(李哲源)이 「미국의 철학계」, 이동제(李東濟)가 「미국의 정치계」, 송창근(宋昌根)이 「미국의 종교계」, 한승인이 「미국의 실업계」, 최경식(崔敬植)이 「미국의 사회계」, 오천석이 「미국의 교육계」, 황인식(黃仁植)이 「미국중등교육」, 박경호(朴敬浩)가 「미국의 음악계」, 신기준(申基俊)이 「미국의 체육계』를 각기 소개했다. 한편 서구 문단에 대한 소개도 여러 편 수록되었다.
『우라키』에는 재미 유학생들의 신입 · 졸업 현황과 통계, 미국 유학생 박사 현황, 미국 유학 안내, 유학생들의 경험담 등도 비교적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유학을 생각하는 국내 학생들에게 미국 유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