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1933년 김약수 주도로 대중과학연구사에서 발행했던 사회주의 성향의 종합잡지이다. 김약수가 발행인 및 편집인을 맡았다. 창간호는 3월 발행되었지만, 일제의 압수로 인해 창간임시호가 4월 1일자로 발행되었다. 월간으로 발행되었으나, 1933년 6월까지 통권 3권까지만 발행되었다.
사회주의주1 그룹 북풍파의 지도자인 김약수(金若水)는 1925년 12월 ‘제1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었다가, 1931년 6월 6일 만기 출옥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주의 성향의 잡지 『신계단』의 1932년 11월 종교시평에서 남만희(南萬熙)가 천도교를 강하게 비판한 일이 있었고, 이에 천도교 청우당 사람들이 『신계단』 발행인 유진희를 찾아가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천도교정체폭로비판회’가 구성되었는데, 김약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김약수는 원경묵(元敬黙), 신갑범(愼甲範), 이갑기(李甲基) 등과 함께 하면서 대중과학연구사(大衆科學硏究社)를 조직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1933년 3월, 변호사 이인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대중(大衆)』을 창간하였다.
김약수가 발행인 및 편집인을 맡았다. 창간호는 3월 발행되었지만, 일제의 압수로 인해 창간임시호가 4월 1일자로 발행되었다. 월간으로 발행되었으나, 1933년 6월까지 통권 3권까지만 발행되었다. 『조선출판경찰월보』에 따르면, 제4호가 편집 중이었지만, 간행되지 못하였다.
각 권 첫머리에 내외시평(內外時評)의 고정란을 두어 김약수가 당시 주요한 시사동향이나 사건 등을 간략히 소개 정리하였다. 국제정세와 관련하여 사회주의 입장에서 분석한 논설들이 많이 게재되었다. 특히 주2 사회주의혁명과 체제를 소개하고, 주3 주4 체제를 옹호하는 글들이 적지 않았다. 또한 중국 주5과 중화 소비에트공화국의 활동, 주6과 국제농민인터내셔널 등 사회주의 국제단체의 활동을 소개하는 글도 자주 게재하였다. 그러나 이들 글 중 일부는 압수 금지에 따라 간행 잡지에는 수록되지 못하였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전개된 조선공산당재건운동, 혁명적 농민 노동운동에 대한 소개, 강달영을 비롯해서 사회주의운동가들의 소식을 전하는 것도 빠짐없이 작성되었는데, 이중 상당수는 잡지에 게재되지 못하였다. 강좌로 안악(安岳)이 「파시즘이란 무엇이냐」, 이강희(李崗熙)가 「자본론은 이러케 읽어라」를 연재하였다. 또한 종교 비판에 대한 글들은 매 호 수록했는데, 양휘명(梁輝明)과 장명(張明)이 각각 「종교비판에 대하야」 글을 수록했고, 정우진(鄭宇鎭)도 「종교란 무엇인가」란 글로 종교를 맹비판했다. 천도교와의 직접 충돌을 계기로 대중과학연구사가 결성되었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협동조합에 대한 글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제2호에는 주7 등의 협동조합에 대한 지침 등을 「협동조합 테제」로 소개하고 있고, 제3호에는 김평해(金平海)와 황욱(黃郁)이 조선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글을 수록하였다.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반에 걸쳐 전국 각지에서 협동조합들이 대거 재차 결성되었는데, 『동아일보』와 천도교가 이를 주도하였다. 『대중』의 글들은 이에 대한 대응이자, 사회주의계열 협동조합운동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대중』은 사회주의적 지향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잡지였다. 투고된 글 중 상당수가 일제에 의해 압수되어 게재되지 못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편집 · 발행인이었던 김약수는 1933년 7월, 일시 일제 경찰에 피검되었다. 그리고 이후 더 이상 『대중』을 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대중』은 사회주의 잡지로서의 성격이 분명했지만, 당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전개하던 이재유(李載裕) 그룹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에서 탈락한 주8들이 발행하는 잡지로, 사회민주주의=사회파시즘 집단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렇지만 『대중』 간행의 주요 인물들인 이갑기는 신건설사사건[제2차 카프사건]으로, 신갑범은 조선공산당재건 관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