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세와 관련한 글로 창간호에는
김양수(金良洙)의 「연맹군축회의와 전망」, 함상훈(咸尙勳)의 「원탁회의 후의 영인(英印)관계」, 이여성(李如星)의 「조선과 외지와의 금융왕래」,
김우평(金佑枰)의 「총선거와 현하 일본의 정정(政情)」, 고영환(高永煥)의 「만주의 근세사(近世史)적 고찰」 등이 실렸다. 제2호에는
홍성하(洪性夏)가 「대독 배상문제 십년사」, 김우평이 「상해사건의 전말」 등이 수록되었다. 제3호에는 「내외 중요뉴스」란을 신설하여 세계 정세와
안창호 조선 압송 등을 다루었다. 국제 정세와 관련된 글들과 함께 조선의 정세를 분석하는 글들도 같이 수록하였다. 창간호의 경우는
천도교 신파의 영수
최린(崔麟)의 「실생활의 동태여하에」,
안재홍(安在鴻)의 「기치부터 선명히 하자」,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宋鎭禹)의 「농민대중의 훈련부터」, 신간회 마지막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냈고 송진우와 가까웠던 김병로(金炳魯)의 「역량을 집중하자」, 기호 기독교세력인
신흥우(申興雨)의 「정치적 의식과 사회적 훈련」,
김활란(金活蘭)의 「문제는 문제의 비례대로」가 수록되었다. 제2호에는 ‘최근 조선사회에서 가장 감격된 일’이라는 특집 하에 여성 문제, 교육 문제, 노동자 기술 문제 등을 다루었는데,
김동환(金東煥)의 「민족운동의 체계화」와
이윤재의 「조선을 알자! 는 사회의 부르짖음을 듣고」라는 글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김동환은 문자 보급 운동과 한글 정리 운동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문화운동의 적극적 의미를 주장했고, 이윤재는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을 비롯한 각 부문 운동이 발전하는 가운데, ‘조선을 알자’는 주장이 대두하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었다. 이는 당시
민족주의자들의 의식과 지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동방평론』은 경제사회문제의 구체적 조사 연구도 수록하였다. 조선사정조사연구회(朝鮮事情調査硏究會)에서 조사한 「조선 현행세제 급(及) 부담조사」를 연재했고, 「조선인 일본인 관리 대조 일람」, 「경제용어 해설」, 「최신 경제용어 해설」, 「사회과학용어 해설」, 「조선내 공장노동자 조사표」 등도 게재했다. 연희전문학교 교수인
백남운(白南雲)이 「과학발전의 역사적 필연성」과 「조선계의 사회사적 고찰」을 연재한 것도 특징적이다. 한편 백남규(白南圭)가
에스페란토와 관련된 연재를 게재하였고, 문예란을 두어
유진오(兪鎭午),
정인보(鄭寅普) 등의 문예 관련 논설,
정지용(鄭芝溶)과
심훈(沈熏)의 시,
채만식(蔡萬植)의 소설도 수록되었다.
이태준(李泰俊)은 모든 호에 걸쳐 문예비평과 소설, 시를 수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