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농민 김영순이 1914년~1988년까지 74년간 작성한 생활 일기.
저자
구성과 내용
일기의 일자 표시는 1914년부터 양력을 기준으로 기록했는데, 1924년 2월 5일[음력 1924년 1월 1일]부터 1931년 11월 24일[음력 1931년 12월 31일]까지는 음력을 사용했다. 1932년 1월 1일[음력 1931년 11월 25일]부터는 양력을 다시 사용했다. 1932년부터 구장으로 활동한 것이 다시 양력으로 변화한 것과 관련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김영순은 설과 추석 등 명절은 음력으로 지냈다. 가족의 생일도 음력으로 기억하고 있다. 농민이었기 때문에 일상적 삶에서는 음력이 더 익숙하고 습관화되어 있었다.
1919년 4월 10~12일에는 장유 지역의 만세운동에 대해 기술한 대목이 있다. 1923년부터 교회에서 운영하는 야학교의 운영과 관련한 부분도 기록되어 있다. 김영순은 자작지를 조금 가지면서 소작을 하는 자소작농이었다. 그의 일기에는 그의 농지 경영과 비료 사용 등의 내용도 자주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는 1932년부터 소와 닭을 기르기 시작했고, 1939년에도 양도 길렀다.
그의 일기에는 축산 관련 일도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김영순은 일제하 식민통치 말단 기구인 면의 무급 보조원인 구장으로 활동했는데, 그의 일기에는 구장이 담당한 다양한 일과 활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일기에 따르면 구장은 식민당국의 지방 지배를 위해 각종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집행하며, 마을 내부의 정보 조사, 각종 세금 징수, 출생 · 혼인 · 사망 · 이동 등의 인구 관리, 부역 노동 동원 등을 맡아 수행했다. 일기에는 김영순의 마을 내 다양한 네트워크와 교류도 기록되어 있다. 구성원간의 차용 문제나 금융조합 이용 내용도 알 수 있다.
1945년 해방이 된 이후에도 김영순의 일기는 내용상에서 큰 변동이 없었다. 일상적인 농가 생활과 교회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가 거주하는 지역이 경상남도 김해이기 때문에 해방 직후의 격동과 한국전쟁 때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해방 이후에도 일기장이나 공책을 활용하여 일기를 작성했는데, 김영순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1970년대 중반부터는 수첩을 이용해서 일기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참고문헌
논문
- 차철욱, 「일제 강점기 김해 지역 농촌의 식민지배와 농민의 일상 : 『김영순 일기』 분석을 중심으로」(『지역과 역사』 46, 부경역사연구소, 2020)
- 배상현 외, 「김해 김용식 소장 근현대 일기류 및 사진자료 최종보고서」(국사편찬위원회, 2014)
인터넷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https://archive.history.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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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예전에, 시골 동네의 우두머리를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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