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운동』은 1925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창간된 사회주의 사상운동 단체 일월회의 기관지이다. 1925년 3월 3일에 재 도쿄 사상단체 일월회의 기관지로 창간되었는데, 과학적 이론의 소개를 목표로 하였다. 이여성이 편집 및 발행인이다. 출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일본 본토에서도 발행금지 4회, 벌금 2회, 휴간 2회를 당했고, 식민지 조선에서는 창간호부터 모든 호가 압수되었다.
『사상운동(思想運動)』은 1925년 3월 3일에 재 도쿄[東京] 사상단체 일월회(一月會)의 기관지로 창간되었고, 과학적 이론의 소개를 목표로 하였다. 1925년 1월 3일 일본 도쿄에서 북성회 회원이었던 안광천(安光泉)과 이여성(李如星) 등이 사회주의 사상운동 단체인 일월회를 결성하였다. 일월회의 회원은 얼마 안 되었지만, 1925년 2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 3월 삼월회(三月會), 11월 재동경조선무산청년동맹(在東京朝鮮無産靑年同盟)의 결성을 주도하면서 재일 조선인 사회주의운동의 지도적 위치에 올랐다. 그리고 일월회는 국내 화요파 중심의 조선공산당과 서울파의 고려공산동맹의 분쟁에 대해 중립적 위치에서 사회주의운동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일월회는 자신들의 주장을 선전하기 위해 조선문 인쇄소인 동성사(同聲社)와 사상운동사를 설치하여 『사상운동』을 간행하였다. 이여성(李如星)이 편집 및 발행인이다. 창간사에서 “우리의 운동은 용감한 싸움을 요구하는 동시에 엄숙한 이론을 요구한다. 과학적 이론을 쫒는 싸움만이 정당한 운동일 것이다. 이에 창간되는 『사상운동』은 현재를 비판하고, 장래를 창조할 이론적 일진(一陣)의 일협지력(一脅之力)이 되고자 한다”라고 선언하였다. 창간호 권두논설에서 일월회 지도자 안광천은 「1925년 1월에 만 천하 동지들에게」란 글로 기존의 조선 사회운동을 비판하고 사상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천명했다.
『사상운동』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글 상당 부분을 직접 번역한 것이 수록되었다. 창간호의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평-사회주의 급 공산주의문서」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원전을 번역 수록하였고, 마르크스의 「고타강령에 대한 맑스의 비판」[제2권 1호], 엥겔스가 쓴 「칼 맑스의 장례식」[제1권 2호], 「과학적 사회주의」[제1권 4호], 「엥겔스 유고」[제1권 4호], 레닌이 쓴 「맑스 약전(略傳)」[제1권 4호], 「러시아 청년에게」[제2권 3호] 등이 게재되었다. 스탈린과 모스크바에 파견된 「동경일일신문」 기자와의 문답이 「국제신문통보」 제5권 제59호에 수록되었는데, 이를 「동양해방운동에 대하여」로 번역 수록 하였다. 또한 레닌에 대한 글이 추범(秋帆) 「레닌의 소전」[제1권 1호], 「레닌을 회고함」[제3권 1호], 「이론가로서의 레닌」[제3권 4호]으로 게재되었다. 카와카미 하지메(河上肇)가 쓴 「맑스의 이상」[제2권 1호]도 번역 수록되었다.
소련과 주1을 다룬 글들도 자주 수록되었는데, 「신국가의 농업정책」[제2권 1호], 「세계무산계급정당의 역사적 강령 세목」[제2권 1호], 주2의 무산계급혁명과 농민」[제2권 2호], 「러시아의 교육방침」[제2권 2호], 「노농노국 노동조합대표 내방기」[제2권 3호], 신흥노국의 중요인물 약전」[제3권 3~4호] 등이 그것이다. 일월회의 주요 인물 중 안광천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서문을 해설한 「유물사관 요령 해제」를 창간호부터 연재했고, 이어서 「자본주의사회의 해부」를 연재했다. 변희용도 「무산계급운동의 실제적 방면」을 수 차례에 걸쳐 연재했다.
1925년 8월에 간행된 제2권 1호에는 일본과 중국, 조선의 사회주의운동의 동향을 다룬 「일본노동총동맹 분열」, 「중국사회운동사개략」, 「조선무산운동의 신경향」 등이 각각 수록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압수, 발매금지 되어 제대로 간행되지 못하였다. 제2권 2호에는 「일본 무산계급의 정치무대 출정의 준비」가 게재되었다. 1926년 1월에 간행된 제3권 1호의 권두 글인 「첫돌을 마치면서」에서 안광천은 일월회의 1년을 돌아보며 앞으로 일월회의 슬로건으로 “대중 속으로 가자!” “공동전선의 편성을 부르짖자!”를 제시하며, 이를 위해 먼저 사회주의자(직업적) 단체의 단일전선을 편성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후 이러한 주장은 국내로 들어와 사상단체의 통합과 정우회(正友會) 결성으로 구체화되었다. 일제의 압박과 경제적 어려움에 따라, 일월회는 제3권 1호부터 사상이론 기관지로서의 수준을 낮추고 잡지의 쪽수를 축소하기로 결정하였다. 그에 따라 대중을 상대로 한 「대화란」, 「질문란」, 「강좌란」, 「신술어(新術語)해석」 등의 코너를 신설하였고, 「시평」란을 고정시켜 이론기관지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사상교양지로 일정 부분 성격을 변화시켰다.
1926년 5월 간행된 제3권 6호에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맑스주의란 무엇인가」, 「맑스 · 엥겔스 연보」, 최익한(崔益翰)의 「맑스 유물론적 변증법의 개설」, 안효구(安孝駒)의 「엥겔스와 이론적 투쟁」, 이우적(李友狄)의 「맑스주의의 견지에어 본 프롤레타리아의 계급구성의 과정」 등이 수록되었다. 『사상운동』은 출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일본 본토에서도 발행금지 4회, 벌금 2회, 휴간 2회를 당했고, 식민지 조선에서는 창간호부터 모든 호가 압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