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대학생 이현경(李賢卿)·황신덕(黃信德) 등 여러 명의 발기로 조선무산계급 및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는 회원이 근소하였다.
1925년 10월 15일 일본 북해도 오타루고등상업학교(小樽高等商業學校)의 야외군사연습에서 교관이 작성한 군사교안에 조선인과 무정부주의자를 가상적으로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동경에 있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재동경무산청년동맹·조선인유학생학우회·무산학우회·흑우회(黑友會)·형설회(螢雪會)·일월회(一月會) 등의 학생단체·사상단체와 함께 연합된 항의단체를 만들고 일본정부를 성토하는 선언문을 작성, 일본정부에 발송하였다.
같은 해 11월 16일 동경에서 앞의 단체 등과 함께 가상적문제규탄 대연설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회의 회원 박경희(朴慶姬)·정칠성(丁七星) 등이 연사로 연설하였다.
그리고 같은해 12월 “조선여성은 계급적·봉건적·인습적 및 민족적 압박의 철쇄고정에 있으므로, 무산계급 남성과 서로 제휴하여 인류의 압력을 근본적으로 일소하고 대중본위의 신사회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언하고, 강령 및 규약을 발표, 재일본 조선무산계급 여성사상단체임을 선언하였다(내용은 미상).
1926년 3월 ‘룩셈브르크 라프크네히트’라는 제목하의 순한글 팜플렛 1,000부를 발행하고, 이를 서무부장인 이춘수(李春壽)가 하기휴가를 이용, 귀국하여 국내 각 단체에 배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