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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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북간도에서 독립군을 조직하였으며, 대한국민의회 훈춘지부에 참여해 소규모 독립군단체의 통합에 힘쓴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20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9년(고종 16)
  • 출생지함경북도 종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시준 (단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북간도에서 독립군을 조직하였으며, 대한국민의회 훈춘지부에 참여해 소규모 독립군단체의 통합에 힘쓴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함경북도 종성 출생.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의 부하로 활약하였고, 노령의 추풍(秋風) 달자동(達子洞)에서 800여 명으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홍범도(洪範圖)와 함께 부하 약 500여 명을 이끌고 노령에서 북간도의 왕청현(汪淸縣)으로 이동해 왔다. 이후 북간도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독립군을 조직하여 통솔하였다.

1919년 9월 중순에는 보위단원(保衛團員)들과 합세하여 합마당(蛤蟆塘)에서 백초구(百草溝)의 습격을 기도하였다. 이것이 좌절되자 서일(徐一)이 활동하고 있던 대감자(大坎子)로 가서 서일과 합류하였다.

당시 서일은 정의단장(正義團長)으로 있으면서 대종교도(大倧敎徒) 및 공교회(孔敎會) 교도 200여 명을 모아 독립의용군(獨立義勇軍)을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서일과 함께 대감자 부근의 산속에서 훈련을 실시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한편으로는 온성(穩城) 등지로 국내진입작전을 감행하였다.

한때 중국측의 검거를 피해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1920년 1월부터 대한국민의회 훈춘지부(琿春支部)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때 훈춘지부의 서기인 김덕한(金德漢)과 더불어 대한국민의회의 회보를 발행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한편으로는 서일·구춘선(具春先) 등과 더불어 북삼분구(北三坌口)를 중심으로 대왕청(大汪淸)·합마당·서대포(西大浦) 등지에 분산되어 있는 소규모 독립군단체들을 한데 통합하는 활동에 주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4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한국민족운동사료: 삼일운동편기이』(국회도서관, 1978)

  • - 『조선독립운동』Ⅲ(김정명 편, 原書房,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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