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대한국민회 남지방회 경호대원 등을 역임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부령군 청암면(靑岩面) 자작동(自作洞)에 거주하고 있던 장두량은 월산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열람하고, 또 서울 및 각 지방에서 시위운동이 일어난 소식을 듣고서, 방낙선(方洛先) 등과 거사를 모의하였다.
청암면사무소의 등사판을 가져와 독립선언서 1,000 여매를 인쇄하여 배포하고, 또 무명으로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31일 신암동에서, 4월 1일에는 포항동에서 시위운동을 일으켰다.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참여하였다.
화룡현(和龍縣) 사백사(四白社) 및 합화사(合化社) 지방을 근거로 한 대한국민회의 남지방회(南地方會)에 소속되어, 경호대원 겸 모연대원(募捐隊員)으로 활약하였다.
1920년 3월 이래 함경도의 회령(會寧)·부령·무산(茂山) 등지에 들어와 장정 및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2,000여 원의 군자금을 모집해서는 칠도구(七道溝) 등지에 대한국민회지회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이동백(李東伯) 등 동지 7명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10년 4개월간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한국독립운동사』2 (국사편찬위원회, 1968)
- 『조선독립운동』제Ⅰ권(김정명 편, 原書房,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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