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학생인 이광수(李光洙)·신익희(申翼熙) 외 7명과 메이지대학(明治大學) 학생인 김양수(金良洙)·장덕수(張德秀)·최두선(崔斗善) 등의 발기로 1915년 11월 10일 조직되었다.
창립목적은 조국에 관한 일반 학술연구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일종의 애국적 비밀결사였다. 1916년 1월 29일 제1회총회를 동경 YMCA회관에서 개최하고, 회의 규칙을 제정하고 간부를 선출하였다.
이 회의 활동에 대해서 잘 알려진 바는 없으나, 회합 석상에서는 항상 피끓는 애국론이 부연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특별히 사무실을 설치하지 않았으나, 나중에 공공연하게 사무실을 설치하면서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1918년 1월 17일 간사 김철수(金喆壽), 서기 백남훈(白南薰)·전영택(田榮澤)·김도연(金度演) 등으로 간부를 개선하였다.
그 뒤 1919년 창립당시의 주최자인 이광수는 상해(上海)로 가서 상해임시정부의 일원이 되고, 장덕수는 귀국하여 언론기관에서 활약하는 등 이 회의 발기인들이 귀국함으로써 1921년 이후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자연 소멸되었다.